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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뇌풍항-영원한 것은 없다
2019년 12월 27일 () 06:01:25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모든 것은 변한다. 변치 않아야 하는 것 마저도. 겨울왕국 2에서 올라프는 안나에게 묻는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요?’ 계절이 변하고 산천도 바뀌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어른이 되면 이런 변화가 두렵지 않게 되냐는 물음에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무거운 화두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역에서는 여덟개의 소성괘, 흔히 ‘팔괘’라고 부르는 것이 두개씩 짝을 지어 총 64개의 괘를 만든 것에 하나씩 이름을 붙인다. 하늘을 뜻하는 건괘는 아버지, 땅을 뜻하는 곤괘는 어머니, 천둥을 뜻하는 진괘는 장남, 바람을 뜻하는 손괘는 장녀, 물을 뜻하는 감괘는 중남, 불을 뜻하는 리괘는 중녀, 산을 뜻하는 간괘는 소년, 연못을 뜻하는 태괘는 소녀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뇌풍항 괘는 장남과 장녀가 만나 이루는 괘이다. 나이가 찬 처녀 총각들이 만나면 높은 확률로 뻔한 이야기가 이어지게 된다. 그러니 恒, 언제나 그렇듯이 늘 그러하다는 뜻의 이름이 붙었다.

항괘의 괘사는 이렇다.

恒 亨 无咎 利貞 利有攸往 항은 형통해서 허물이 없으니 바르게 해야 이롭고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

서로 만나 아무런 거리낄 것이 없는 처녀 총각이 만났으니 허물이 없으나, 그 사귐은 올바른 방식으로 해야 이롭고, 둘이 만나 그저 즐겁고 말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되어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뜻을 두면 좋겠다. 이런 어르신이 젊은 커플에게 해줄만한 이야기가 떡하니 괘사로 등장한다. 그러나 효사를 짚어보면 하나 하나 만만하지가 않다.

初六 浚恒 貞 凶 无攸利 초육은 항상함으로 파느니라, 고집해서 흉하니 이로울 것이 없다.

처음 사귀는 커플이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뜨거움은 아무래도 한 풀 꺾이기 마련이다. 그동안 서로 발견하지 못했던 싫은 점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연애하느라 미뤄두었던 사교 활동이나 일이 밀어닥칠 수도 있다. 싸움이 생기는 지점은 항상 여기다. 아무래도 예전과 달라진 모습에 서운해지고, 그때와 같은 마음과 행동이길 바라는데 상대방이 응해주지 않는다면 ‘이제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하고 생각하며 좌절하게 된다. 그러나 사랑은 없어진게 아니라 그동안 너무 치솟았던 열정이 사그라들면서 잔잔한 애정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라는 걸 겪어본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린다면 결국 흉할 수 밖에 없다.

九二 悔亡 구이는 뉘우침이 없어진다.

달랑 이 두글자가 끝이다. 초육의 위기를 넘긴 커플이라면 이제 조금 더 오래된 관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 사귄 것을 후회하거나 지금 상태에 불만이 없어지면 이런 생활이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란 말이다.

九三 不恒其德 惑承之羞 貞 吝 구삼은 그 덕을 항상 이루지 않음이라, 혹 부끄러움을 이으니 고집하면 인색하다.

잔잔하고 별 탈 없는 연애생활이 길어지면 지루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주변으로 눈을 돌려버린다. 당연히 해서는 안 될 행동이지만 ‘내 머릿속에서만 생각하는데’, ‘그냥 나 혼자 마음에 품고 있는건데’ 하면서 마음 속의 비밀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 자기의 파트너에게 몹쓸 짓을 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그러니 부끄럽고, 그런 행동을 계속한다면 인색할 수 밖에 없다.

九四 田无禽 구사는 밭에 새가 없다.

밭에 새가 없다는 것은 쪼아먹을 낱알 한 톨이 없다는 말이다. 새조차 오지 않는 황량한 밭은 생각만 해도 쓸쓸하고 처량하다. 구삼에서 바람이 난 파트너는 이제 상대방에게 관심조차 없다. 그러니 관계가 이어질 수 있을까.

九五 恒其德 貞 婦人 吉 夫子 凶 구오는 그 덕을 항상 지키면 바르다. 여자는 길하고 남자는 흉하다.

아무래도 이 커플 중에 계속해서 마음을 지킨 것은 여자인 모양이다. 짧고 굵게 뜨거웠던 천둥같은 남자와 달리, 끊임없이 부는 바람은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그것이 각자 가진 속성이었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본성을 이기고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이 德이며, 그것을 지킨 쪽이 옳고 길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上六 振恒 凶 상육은 항상함을 떨치니 흉하다.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정성도 일방통행이면 소용이 없다. 결국 지켜야 할 도리를 못 지킨 사람과 그런 파트너에게 배신당한 사람이 어떻게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까. 결국 그렇게 헤어질 수 밖에 없다.

항상, 영원, 지속, 꾸준함을 뜻하는 ‘恒’괘의 효사는 하나같이 영원하지 않다. 흔들리고, 변하고, 배신하며, 결국 깨어진다. 계속해서 소중하게 품고 있어야 하는 사랑하는 마음과 상대에 대한 도리는 무색해지고 관계 자체가 주는 고통과 절망만이 남는다. 恒괘의 의미는 그런 뜻일거다. 제발 좀 영원하라고, 그 마음을 계속해서 지켜 보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꾸준히 좋은 사람이 되어줘 보라고, 혹시나 끝이 난대도 계속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남아줘 보라고.

사람 하나 잘못 만나 더럽게 끝난 걸로도 인생은 충분히 힘들었을게다.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그 사실에 대해 찢고 난도질하는 것도 모자라 처벌을 바랬던 사법부도 등을 돌리고, 정작 가해자는 승승장구 잘 먹고 사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녀의 심정은 어땠을까. 응원의 목소리는 너무 멀고 비난의 목소리는 너무 가까운 가운데 그녀의 외로움은 얼마나 깊고 어두웠을까.

영원한 것은 없다. 그 사실만이 변하지 않는 진리인 가운데, 영원할 것 같은 고통 끝에서 잘자라는 인사를 남기고 영원한 잠에 든 그녀가 부디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있길 기도한다.

故 구하라씨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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