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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기초학문 이대로 둘 것인가
한의학 교욱 관련 긴급제언
2013년 02월 07일 () 16:20:02 이태희 mjmedi@mjmedi.com

   
이태희 가천대 교수
필자는 대학 졸업 후 한의학 기초학교실에 조교로 남아서 근무하였고 지금은 교수로 있다. 꿈은 하나였다. 한의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정상에 우뚝 선 한의과학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한의학이 학문으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고 한의학을 하는 사람들이 정당한 존중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과학을 배워서 한의학에 접목시키고자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정말 힘들었고 잘 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상대측의 잘못도 있다. 신약개발을 위한 재료창고로 한의학을 대하는 것이다. ‘한약에 뭐 좋은 것 없느냐’는 식의 접근이다. 항상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이제는 한의계의 아이디어가 필요 없어진 상태인지 모르겠다. 본초와 처방을 인용하거나 참고할 만한 자료들이 이미 시중에 나돌고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 편의 잘못도 있다. 정말 지나칠 정도로 임상에 관심이 치우쳐 있다. 자료도 부족하고 현실적으로 각 한의과대학의 기초학 교실의 열악한 환경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힘들어 구체적인 데이터 제시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일단 문제제기만 하고자 한다.

우선 학생들의 태도와 교육내용을 보자. 대부분 개원가로 가서 성공하는 한의사가 되는 것이 목표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이 이 길로 가는 게 문제다. 이들에게 학교공부는 지나가는 과정이며 면허증을 획득하기 위한 학점취득이 목표이지 학리자체의 발전이나 학문적인 발달은 관심이 부족한 편이다. 오히려 학교 다닐 때부터 임상적인 탁월성을 보이는 모임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주가 되고 학교는 부차적이다. 학(學)을 추구하기 보다는 지나치게 술(術)을 추구한다. 학(學)이 받쳐지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다들 기초학교실에서 교수들이 얼마나 열악한 가운데서 최선을 다하는지 모른다. 얼마 전까지 타 분야에서 학위를 받은 한의대생들이 왔을 때 이들이 기초학에 남아서 과학적인 역량을 한의기초과학에 쏟아주면 어떨까하고 기대해보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쪽이 지쳐서 왔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그동안 배우고 닦았던 공부는 휴지가 되고 임상으로 다 가버리고 말았다. 한의학 기초학교실에서는 새로 과학을 배우든지 사람을 구하느라고 따로 투자해야 했고. 더구나 현재 상황에서 학생들이 기초학에 조교로 남아서 연구하거나 타분야에 가서 훈련을 받은 다음 다시 돌아오게 하려 해도 현재의 처우로는 상당한 무리이며 더구나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거나 학교 형편이 열악한 학교에서는 엄두를 내지 못할 상황이다.

둘째, 한의대에서 가르치는 의학과목의 내용과 양을 보자.
적지 않은 시간이 배정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형식적으로 훑어주는 정도가 아닐지 모르겠다. 한의대 출신자가 이 과목들을 맡아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진정성을 가지고 한의학과 접목시켜 가면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학과목을 대하는 한의대생들의 태도는 정말 불성실 그 자체다. 가르치는 쪽과 배우는 쪽이 서로 불성실해서 대충 하고 넘어가지는 않은지. 정말 검토해 봐야 한다.

셋째, 학교에서 한의기초학을 대하는 태도를 보자.
학교운영이 급한 것일 뿐 한의학의 학문발전에는 관심이 부족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학교에는 한의과대학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학교병원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한의학계는 찬 밥 신세가 되고 있다. 한의과대학의 기초학을 제대로 지원하는 대학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학생들을 한의사로 훈련시키고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어야 하는가. 한의학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수준의 과학이 아니라 첨단의 과학기술과 장비가 필요하다. 과연 이런 기준을 만족시키고 있는 한의대가 몇 군데나 되는가.

넷째, 연구와 관련된 부분이다.
타 학문은 학생들이 대학원생으로 남아서 연구하며, 스펙을 쌓느라고 또 열심히 연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따로 연구원을 구해야 한다. 조교도 없는 상태에서 연구원도 구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교수는 모든 행정을 다 떠맡고 거기에다 책임시수를 9시간 채우려면 거의 강의만 하게 된다. 심지어 사환역할에서 교수역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의과대학은 한 과목당 심지여 10여 명의 교수가 강의하기도 한다. 이런 형편에서 무슨 연구를 위한 논문이 가능한가. 이런 상황에서 따로 연구비를 신청해서 연구를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그러나 한의대 기초학 교수는 이제 SCI급의 논문을 써야 한다. 그것이 한의학에 유익한지는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해가 될 수가 있는데도. 한의계는 그동안 기초과학을 위해서는 결국 외부의 도움을 받거나 기초과학자를 초빙하여 연구를 수행해 왔다. 그 결과 아이디어와 물질과 경비와 특권을 거의 외부에 유출하고 말았다. 아니면 내부 갈등이 발생하거나 했다. 모든 경우는 아니라도 한의학의 정체성은 상당히 무너지고 말았다. 한의학의 가치를 입증하는 실험은 거의 전무하다. 한의학연구원에서 수행하는 몇 과제를 제외하고는 거의 신약개발에 치우쳐 있다. 개원가를 살리는 연구는 거의 전무하다. 개원가를 살려야 한의학계가 살아나게 되고 그래야 산업화도 가능할 것이고 그래야 학계가 다시 살아난다. 언제는 순수한의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의학적이 아니므로 실험은 필요 없고 오로지 문헌적으로 잘 정리한 한의학만 요구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첨단의 과학을 요구받기 시작했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필자는 정말 한의과학을 해서 한의학에 기여해보고자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어떻게 하든 내 개인의 문제만 해결하면 될 문제가 아님이 점점 분명해졌다. 정말 한의기초과학을 이대로 홀대할 것인가.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한의대에서 기초학을 선택한 것의 비애를 이렇게 깊이 느껴야 하는 것인지. 정말 어항 속에서 금붕어가 산소공급이 다하여 수면위에 머리만 내어놓고 마지막 숨을 쉬고 있는 듯한 한의학 기초학교실의 형편을 이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필자는 대안으로 한의과학대학원 설립을 요청한다. 임상 위주로 달음질치는 현실에서 진정한 학문으로서 한의기초학이 발달하려면 별도의 체계를 가진 한의과학대학원이 설립돼야 한다. 그리고 각 대학의 한의기초학 교실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 태 희 가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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