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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사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기행
2003년 03월 19일 () 14:01:00 webmaster@mjmedi.com
예술가로 산다는 것

인간이 자연 속에 살면서 완벽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고민의 끝에 예술작품이 인간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주는가, 혹은 예술가가 가져야할 목표나 의무는 무엇일까 하는 또 다른 질문의 시작을 만나곤 했다.

저자 박영택은 10년 가까이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고 현재는 경기대 미술학부에 근무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부제 그대로 ‘숨어사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기행’이다. 사실 이 책에 소개된 10명 예술가들의 삶은 숨어 산다기 보다는 어쩌면 순수 창작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과 화려한 외형과 물량을 중시하는 한국화단이 소외시킨 결과라 말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저자의 심미안을 따라 이 책을 접하다보면 우린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외면하고 살아왔나 가슴을 져미게 한다.

책 속에는 각 작가별로 소제를 달아 마치 그들의 작업실처럼 독립적인 공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소제목 하나 하나가 그 예술가들이 얼마나 절박하고 투철한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외쳐댄다. 절대고독, 최소한의 생계, 갑판 위의 시인, 그토록 서럽고 슬픈 추억, 혼과 육체를 저당잡힌 단식광대 등등, 저자는 빼어난 글 솜씨와 큐레이터의 심미안으로 각 작가의 예술혼을 짚어내고 있다.

가난한 조각가는 경제적 사정으로 흑연가루를 지문이 닳도록 종이에 문질러 하나의 회화를 완성한다. 부업이라고 말하기엔 이미 생업이 되어버린 목수 화가는 가벼운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고, 가볍고 못 그렸지만 감동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어한다. 폐교에 숨어서 자신의 얼굴조차 사진 찍히기 싫어하는 예술가는, 하지만 수 없는 떨림의 선으로 따뜻한 사람의 얼굴을 그려낸다.

우리가 전시회나 화집에서 예술가들 스스로 내보이고 싶어하는 단편적인 시공간과 그의 작품을 보고 작품성을 속단하려 해왔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예술작품을 몸으로 베고, 낳고, 길러낸 전 과정을 같이 숨쉬게 하는 마력이 있다. 또 표지그림으로 선택된 김명숙씨의 작품 ‘Grace & Gravity Ⅲ’에 단 저자의 해석대로 ‘그림이 어떻게 마음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이 책 전반의 화두 혹은, 예술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읽는 사람 머리 속에 떠올리게끔 만든다. 나아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창작의 세계가 얼마나 고되고 투철한 마음가짐을 요구하는지 쉽게만 살려는 속인들에게 깨치라 외치기도 한다.

이 책에 실린 작업실의 풍경은 모두 사진작가 김홍희씨의 작품이다. 굳이 사진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작품이라 말하고 싶은 이유는, 사진 한 컷 한 컷이 그 예술가들의 작품성이 그대로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시선으로부터,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있던 치열한 삶을 그리고, 그 고귀한 예술혼을 우리에게 돌려 보내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박영택 著
마음산책 刊

박근도(서울 상계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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