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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
2011년 02월 09일 (수) 06:28:24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정치권력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정치의 내용이 이념적·윤리적인 계기보다도, 지배자 또는 국가가 자기의 이익 추구를 위하여 행하는 권력투쟁으로 파악하는 생각이나 정책을 말한다. 또한 국내정치에서는 권력중심적으로 정치를 생각하는 마키아벨리즘적 정치를 가리키는 데도 이 용어가 등장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순수하게 자기의 이익추구를 위해 사용되던 이러한 개념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차라리 국제정치를 솔직하게 권력정치로 파악하고, 자국의 이익은 물론이요 상대국의 이익도 인정하는 것이 비현실적인 이상주의보다 오히려 참다운 평화를 유지하기에 합당할 것이라는 견해가 등장하기도 했다.

즉 자신의 이익도 이익이지만 상대의 이익도 따져 보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실정치에서는 아주 유연하게 이러한 입장이 반영되는 것이다. 김영삼, 김종필, 김대중으로 엮어진 소위 ‘3김시대’에는 이러한 정치권력이 아주 보편타당하게 적용된 시대였다. 특히 김대중의 경우에는 김영삼, 김종필 두 사람이 아예 노태우가 이끌던 민정당과 합당하는 이른바 ‘3당 합당’을 하자 두둑한 정치자금을 받아 내기도 했고 필요에 의해서 나중에는 김종필과 손을 잡고 정권을 창출해내기도 했다.

낮에는 싸우다가도 밤에는 형님 아우로 다시 만나며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고 국회 안 사우나에서는 비공개 밀담이 여야를 막론하고 민주노동당 같은 골수 종북주의 좌파정당을 제외하고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막혔던 정치도 풀리는가 하면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한다. 그래서 3김을 일컬어 ‘정치9단’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교계를 보면 이런 ‘정치 9단’은 찾아보기도 힘들뿐만 아니라 서로 두 번 다시 안볼 것처럼 싸운다는데 그 문제점들이 있는 것 같다. 한국교회의 정치권력은 일제시대에는 주기철 목사 같이 엄한 목회자를 이단으로 정죄하거나 ‘신사참배’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결정을 내리는 식민지 지배 하의 교회 상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 이후로는 ‘용공’문제나 ‘WCC'같은 이념적 혹은 반공과 관련된 사안이나 자유주의 신학 논쟁이 뒤따랐고 그것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때만 해도 교계에는 ‘바른 말’을 할 어르신들이 살아계셨고 목회자들도 순수한 면이 많았다. 누가 총회장을 맡던 관심도 없었거니와 특히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한기총’을 한경직 목사님께서 세우신 목적도 그것이 ‘정치권력’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좌파진영에서는 3공화국과 5공화국 당시 교회가 국가조찬기도회를 연 것을 빌미로 마치 정치권력과 교회가 밀월관계에 있었던 것처럼 매도하지만 국가조찬기도회는 많은 나라들이 지키고 있고 꼭 기도회에 참석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정치목사’라고 여기는 풍토는 없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원로목사처럼 아예 ‘기독당’같은 정당을 창당하는 분도 계셨지만 그렇다고 전문 크리스천 정치인들을 양성하자는 취지였지 직접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 교계를 보면 ‘정치’에 목숨을 건 ‘정치목사’들이 너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물론 정치목사라고 해서 다 나쁜 의미로만 불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교계에서도 특유의 정치력이 발휘되어야 할 때가 많다. 과거 교계의 어르신들은 이러한 정치력을 발휘하여 교계를 정화하고 얽힌 문제들을 풀어내며 여러 가지 연합 사업을 잘 이끌어가셨다. 초교파적인 선교나 구제, 기타 연합 사업들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정치’는 필수라고 볼 수 있다. 작금의 한기총 사태를 보면서 ‘정치권력’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선거법 위반과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더라도 출마하는 후보나 이를 또 묵인하는 유권자는 여러 가지 종류의 금권으로 서로 얽혀있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게 된지 오래다.

지난달 20일 열린 한기총의 정기총회가 사상 유례가 없는 파행으로 치달은 가운데, 현재 한기총은 길자연 목사 대표회장 인준 적법성 논란으로 각각 상대방에 대해 불법성을 지적하며 강하게 대립하고 있다. 결국 한기총 개혁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생겨나고 법적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길목사는 이미 임원교체도 없이 일방적인 취임식을 마친 후 불교의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 사회각계각층 인사들을 만나며 나름대로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비대위가 주장하는 것처럼 선거법 위반자가 당선무효에 해당돼도 직무를 수행하는 선례를 남기게 되면 앞으로 제2, 제3의 길자연 목사가 등장한다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세상법으로 가더라도 항소와 상고 등을 감안하면 짧아야 6개월 길면 8개월 이상 걸린다는 점을 들어 1년 임기제의 한기총 회장에게 줄 수 있는 영향력은 매우 적다는 현실적 상황 때문에 소송이 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정치력’이다. 이런 부끄러운 일들이 세상에 알려져 좋을 것은 하나도 없는데 정작 이러한 갈등을 봉합할 교계의 자정능력은 상실되어 있다는 서글픈 현실이다.

정치목사는 많은데 실제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교계의 현실 앞에서 ‘정치권력’이란 것이 무척이나 허무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권력에 집착하는 것만큼 그 권력의 수명이 짧다는 것을 이집트나 튀니지 같은 나라는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민주화가 성숙되었는데 교계만 그걸 따라 잡지 못한다면 결국 국민으로 부터 외면을 당하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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