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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은 '약방의 감초'

2011년 01월 17일 (월) 21:10:16

한기총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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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처음 국회의원이 되고 한 1년쯤 지나니 국회의원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이 생겼다. 한마디로 말해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리를 빛내주는 사람이 국회의원이지 싶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선거구와 국회 그리고 기타 사회기관이나 단체의 이런저런 행사에 참석하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잘 모를 지경이다. 내가 필요해서 가기도 하지만，대부분은 초청을 받아서 간다. 행사를 주최하는 측 입장에서는 국회의원 정도가 참석해야 행사의 격이 높아진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러다 보면 국회의원은 각종 현안에 관한 책이나 자료를 볼 시간은커녕 차분히 생각할 시간도 제대로 없다. 어쩌다 간혹 언론에서 '공부하는 국회의원'이라는 기사도 보지만，내 생각에 그런 국회의원은 거의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참석하는 행사에서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문제다. 일단 상석에 앉아야 한다. 행사에서 어쩌다 자리 배치문제로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내빈 소개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일단 일일이 부르고 인사하고 박수치고 하는 절차 자체가 지루하기 짝이 없다. 어쩌다 순서가 잘못되거나 빠지게 되는 경우 소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다음 축사다. 축사도 순서가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내빈 소개 이상이다. 더 큰 문제는 축사의 내용이다. 우리가 축사는 으레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알고 있듯이，짤막하지만 인상적인 축사를 듣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다. 특히 출판기념회처럼 행사의 주인공을 치켜세우는 축사는 너무 뻔하고 낯간지러운 덕담을 늘어놓느라 듣는 사람이 오히려 닭살이 돋을 지경이다. 이런 내빈 소개와 축사를 꼭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게다가 정치인이 주최하는 행사에는 참석하는 국회의원의 숫자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국회의원의 머리수가 일종의 세 과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지어는 기자들이 참석한 의원들의 숫자를 세기도 한다. 이러니 모든 행사 주최자는 의원들의 참석 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은 서로서로의 행사에 품앗이로 참석하느라 하루 종일 정신이 없다.

여의도에서 열리는 공청회나 세미나에 참석해보면 의원들이 소개가 끝나자마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장면을 흔히 본다. 행사의 내용은커녕 제목이라도 알고 가는지 의문이다. 예전에 기인으로 불렸던 어느 선배 국회의원은 끝까지 남아 있을 행사가 아니면 절대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그때 내가 그 선배님께 이런 제안을 했다. 정치인들이 끝까지 참석하지 않으면 내빈 소개 및 축사를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자고.모두 다 웃고 말 얘기지만，정말이지 그렇게라도 해야 국회의원들에게 공부할 시간이 좀 생길 것 같다.

정두언 < 한나라당 국회의원 dooun4u@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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