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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x-파일]
뉴욕에서 퇴직 언론인이 한국에 보내는 글
2010년 11월 01일 (월) 07:02:52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부추연 박지원, 영화배우와 동거 여론 1번지
주당 원내대표의 정체를 알고있는 뉴욕 언론인의 글
 
 
 
 

(워싱턴-뉴욕) 미국 동부지역에서는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정책을 반박하고 나서는 박지원 現민주당 정책위의장에 대해서 비난의 말들이 많다.

박지원씨는 2006년 5월 25일 파기 환송심 선고공판(서울고법 형사2부)에서 징역 3년에 추징금 1억원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었다.

박지원씨의 범죄혐의는 SK그룹과 금호그룹 등 대기업으로부터 각각 7천만원, 3천만원 등 도합 1억원을 받았고, 국민들의 동의 없이 불법으로 북한 김정일에게 국민들의 혈세를 갖다 바친 역적행위에 대해 직권남용 및 외국환거래법위반,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으로 판결이 난 것이다.

(2003년)
6월 16일-대북송금 특검,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긴급체포
6월 17일-직권남용,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수감
6월 30-대검 중수부, 현대그룹 비자금 수사 착수
8월 4일-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투신자살
9월 3일-대검 중수부, 박 전 장관 추가기소
(현대그룹서 뇌물 150억원 받은 혐의)
12월 12일-서울중앙지법, 징역 12년. 추징금 147억500여만원 선고

(2004년)
6월 11일-서울고등법원, 징역 12년. 추징금 148억5000여만원 선고
11월 12일-대법원, 150억원 뇌물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 파기환송
11월 16일-박지원 前장관 보석으로 출소

(2006년)
4월 4일-검찰, 결심공판서 징역 20년. 추징금 148억5000여만원 구형
5월 25일-서울고법, 징역 3년, 추징금 1억원 선고 및 법정구속

그러나 국민들을 배신한 그러한 역적행위를 한 박지원씨에 대해, 함께 친북정책을 펴왔던 노무현

정권(국무총리 한명숙)은 정권 말기 노무현 대통령 취임4주년 특별사면과 복권이라는 각본을

만들어 2007년 2월 25일 박지원씨를 풀어주었다.

실명위기까지 갈 정도로 다 죽어간다던 박지원씨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목포지역구에서 제18대

국회의원으로 출마 하겠다고 나섰었다.

뉴욕에서 가발회사 장사꾼에서, 현재 대한민국 국회 야당 원내대표까지 맡은 그를 그동안의 행적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그러한 그를 보고 미국내 한인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고국이라 믿고 있는 수많은 한국인들은, 돌아가고 있는 한국 정치판에 대해 비난과

조소를 보내고 있다. 인간이라고 볼 값어치 없는 사람을 왜 정치판에서 놀아나도록 하느냐? 라는

것이다.

다음 글은 1975년 8월 뉴욕으로 이민 온 뒤, 36년째 살고 계시는 주은택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이사람 정체 바로 알기’라는 글을 싣는다. 이글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한인들에게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필자 경력)
1967년 TBC-TV 전속 탈랜트 5기생으로 입사하여, 69년 개국한 MBC-TV로 스카웃 되어 갔다가.

1973년 KBS-TV가 방송공사로 창립이 되면서, 기념으로 '창립기념 일일연속극 50회 분을 공모했을

때, 유일한 당선작으로 1백만원 현상금을 받았음. 이것은 최초의 탈랜트 출신 드라마 작가의 탄생이

었으며 일일연속극 50회를 일시에 내놓은 최초의 일일연속극으로 기록된다.

드라마의 제목은 '봉녀'였으며 주인공 봉녀 역은 '김자옥'이 맡았고 당시 그녀는 20세 전이었다고

기억한다. 드라마 봉녀는 김연진 연출로 74년 1월부터 3월 말까지 방영되었다.1975년 까지 MBC-

전속 탈랜트로 일 하다가 그해 8월 5일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뉴욕에서는

수 년 간 한국계 신문과 방송등 언론에 종사하였고, 현재 은퇴하여 가사 일을 돌보고 있음.

“불호령-하는 의원들은 모두 청렴하신가?”

멀쩡하기만 했던 사람들이 어느 날 청문회(聽聞會)에 끌려(?) 나와 꼼짝없이 수모를 당하는

후보자들을 바라보면서 이유 모를 한탄이 피-시식 하고 새어 나온다.

원세상에 저렇게 당하면서까지, 총리 및 장관들은 해야 하는 건지. 그게 아니면 청문회에서

무난하게 통과할 만한 인재들이 대한민국에는 없는 것인지...

특히 실세니 뭐니 날이 새고 지면 언론의 중심부에서 주목을 하고 있는 이재오-라는 사람이

박지원의원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다 못해 이마가 상대방의 배꼽 아래까지 내려가는 사진을 보고

나서는, 저런! 저런! 하는 탄식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후보자들이 하나같이 의혹과 관련해서 ‘사과-죄송’ ‘죄송-사과, 를 반복하는 동안에 못된 자식을

꾸짖듯 불호령을 내리는 저 사람들을 청문회에 끌어내면 과연 어떤 광경들이 연출될까 꽤 흥미가

간다. 그 사람들은 아무 흠결(欠缺)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참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가련한 장면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기어이 장관을 해야 하는 건지,

망자의 혼을 업고 재 약진하는 박지원은 흠결이 전혀 없나?]

불과 2,3년 전에 감옥 안에서 실명(失明)을 할지도 모른다면서, 보석(保釋) 선처를 호소했던 그가

지금은 청문회 야당의 선봉장이 되어 마치 군주처럼 행세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세상과 인간의

극과 극의 조화로움에 경외감까지 느껴진다.

1975년 뉴욕에서는 두 한인회가 대치해서 년말 한인회 파티를 홍보하고 있었다. 총영사관이 나서서

중재를 하여 같은 곳에서 함께 파티를 하도록 극적인 타결을 보아 맨해튼 42가 그랜드 쎈트럴에

있는 코모도어 호텔에서 열리게 되었다.

나는 이민 온지 불과 두 세달 밖에 되지 않아서 파티니 뭐니 그런 곳에 갈 형편이 아니었지만 가수

조영남이 게스트로 출연을 한다고 해서, 그를 만나러 그곳엘 갔다.

조영남의 순서가 끝나고 패티킴이 노래를 하기 전에 인터미션이 있어 복도로 나갔다..

나보다 연령이 좀 있어 보이는 젊은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저어! 혹 라이터 가지신 것 있습니까?”
“네! 라이터는 없고 성냥은 있습니다.”
“아! 그래요 라이터나 성냥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허허..그런데 어디서 뵌 것 같다 싶었는데 혹

탈랜트 아니십니까? mbc에 계시지요? 거기 민영x-PD가 제 친구입니다. 탈랜트 이영후씨 와도 잘

잘 알고요.. 나 박지원이라고 합니다.”


[처음 선서할 때에는 제법 비장한 얼굴로 한판 붙을 것 같더니만, 끝날 때까지 죄송, 사과,만

반복하다가 맥없이 물러난 사람..그래가지고 어디 총리는 커녕..]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몇 년이 지나갔다..그런데 뉴욕의 한국신문에 자그마한

광고가 났는데 심상치 않았다..

“대종상(大鐘賞)주연 여우상을 받은 최정민이 운영하는 ‘룸 싸롱’ 이런 광고였다..

-어! 얘가 미쳤나? 아니 어떻게 이런 광고를 신문에 다 낸단 말인가-?

그녀는 TBC-TV에 6기생으로 입사했던 후배였다..그러나 그녀는 공개모집에 응모하여 합격이 된

것이 아니라 슬그머니 낙하산을 타고 내렸었다..뒷말로는 그녀를 강력하게 미는 사람은 김재형

PD라고 했다..

내가 그녀가 무엇을 하전 이래라 ! 저래라! 간섭할 일은 아니지만, 아니 그래도 그렇지. 먼 나라

이국땅에 와서 기껏 한다는 장사가 술장사에다가..한국의 영화상까지 들먹일 일은 무엇인가..

더군다나 그 때 그녀의 나이도 3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아무리 먹고 살기 위하여 한다고 하지만

대종상 여우주연상까지 내 걸 건 무엇인지..또 그걸 보고 얼마나 많은 놈들이 찾아올지..

당시에는 [1978-9년 경]뉴욕의 한국지사가 수 백 개 였고, 맨해튼에는 거의 백 여개의 한국인 경영

룸-쌀롱이 호황을 맞았던 시기였다..좌우간 전자올겐 치는 연주자들의 수입이 하루에 1천 달러가

 

넘었고, 2차 가는 여자들은 평균 하루에 500달러씩을 벌었다니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몇 달 후에는 더 기가 막힌 소식을 전해 들었다..서울에서 XX전기 주식회사의 회장 부인이

었던, 할머니 나이의 진봉x여사와 간통을 해서 경찰조사까지 받았다는 풋내기 가수 T-가 뉴욕에

와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바로 그 룸싸롱 여배우와 결혼을 했다는 것 아닌가?

최정민이도 중구에 있던 M극장 유부남 사장 아들과 어쩌고 하다가 도망치듯 나왔다더니 여기까지

와서 또 무슨 짓들인지 모르겠다..뭐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라고 치지도외(置之度外)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그들은 어인 일인지 결혼한 지 6 개월 만에 이혼을 했다. 좌우간 초고속 결혼에 이혼.. 할리웃

여배우들이 졌다고 손을 들 것 같다. 이들의 꼴불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 또 그들

아니면 누가 이렇게 하랴.

그리고 나서, 그녀는 곧 박지원과의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최정민은 그 후 맨해튼 59가 1-ST AVE 케이블 카 정류장 아래에서 수 년 간 꽃가게를 운영했다..

물론 그 뒷돈을 대 사람은 그였을 것이다..

지금 ‘구글’에 들어가면 여기 저기 최정민과 박지원의 스토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 케케묵은 이야기가 왜 요즘 다시금 고개를 들까? 생각을 했더니 최근 그의 화련한 부활 때문이

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그 여러 개의 글들 중에는 무시무시한 살인이야기도 등장이 된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지의 여부는 나 역시 모르는 부분이다.

연좌제가 언제 폐지되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가계는 한마디로 골수좌파 일색이다..그런 불안정한

위치에서 그가 전라도에서 고교를 나오고, 단국대학 영문과를 나와 미국에 온 것은 절치부심

한(恨)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꼭 성공해서 돌아 간다!,,를 되 뇌이면서..그는 약진을 계속했다.

미국 뉴욕에서 한인회장 지냈다는 경력 하나 가지고 그가 김대중에게 편승하여 귀국을 한 것은

어쩌면 금의환향(錦衣還鄕)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렇게 조아려 목숨부지하고 미국으로 와 친 아들 세 명보다 더 귀한 박지원을 얻어가지고

들어가 대통령까지 했으니...참 할 말이 없다..대한민국은 이런 나라였나?]


[스님이 고기 맛을 보시면 환장하신다더니, 이 양반 한번 해 잡수셨으면 그만하는 게 좋을 텐데..]

그의 발군의 실력은 바로 재빠른 배신이다.

12/12사태 후 미국을 방문했던 전두환의 밀착경호를 자원 했던 그가, 전두환에게 사형선고를 받고

반성문을 쓴 뒤, 미국으로 망명을 온 김대중에게로 과감하게U-TURN을 한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점에서 그는 특유의 배짱과 절묘한 배신(背信)을 장점으로 이용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나는 그와 지근 거리에서 일하며 여러 번 만난 사람이다..그리고 그와는 아무런 감정도 없다..이제

와서 그를 향하여 비난을 퍼부을 일도 없다.

다만 한번 권력의 2인자까지 올랐던 그가 죽은 DJ를 업고 다시금 정치일선에 돌아온 것은 욕심이

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김대중 정권 때 저지른 여러 가지 극비 사항들은 어느 날엔가는 다시 수면 위로 부상(浮上)할

것이다.

세 아들을 제쳐놓고 아들들 보다 더 DJ로부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괄목할 만한 일이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화근이 되어 자신에게 피할 수 없는 흉기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그의

도를 넘는 최근 활동이 어쩐지 위태롭게만 보인다..

그는 권력의 허무함을 아직도 모르고 있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달도 차면 기운다는데..............

 
추천 : 10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부추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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