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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敵前 宥和根性이 亡國을 초래한다
문영일(예.육중장/국가안보전략사상사학연구회 대표)
2010년 09월 01일 (수) 17:44:39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유화책략의 근원지는 바로 북한, 우리 국민들의 一戰不辭 의지 있어야

지난 6월16일 오후 9시 30분, "수상한 낙하산 4~50개가 안산시 군자동에 낙하" 했다는 신고가 당국에 접수되자, 국방부는 정확한 정보도 없이 바로 '북의 낙하산공격침투'로 판단하고 국방부와 합참이 비상이 걸린 바 있다.

이는 군 출동 2시간 만에 인근유치원에서 행사용으로 사용했던 풍선이었음이 판명되었고, 국가비상사태(?)는 한밤의 쇼로 끝난 바 있다. 이것은 어느 방송드라마의 시나리오가 아니고 바로 오늘, 우리국민과 우리 군 스스로가 얼마나 심각한 안보불안상태에 놓여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우리 국민의 상당수는 유화근성에 젖어 '무슨 대가를 치루든지 평화를 구걸해야한다'는 좌파종북주의자들에게 표를 주고는 밤에 풍선만 날아도 "적 공수부대 낙하, 전쟁이다!"로 착각하여 불안심리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최근 천안함 폭침사태 중에 진행된 6.2지방선거와 7.28 재.보선을 전후하여 종북공산주의 정당과 좌파종북주의 정치인, 사이비 학자 그리고 전교조와 그 제자들은 북의 군사도발과 전쟁 위협 협박에 굴종하여 비굴하게도, "이번 선거는 전쟁세력과 평화세력의 대결"이라는 희한한 구호로 선전선동하여 톡톡하게 재미(?)를 봤다.

이러한 선전선동은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그 전략이 얼핏 보기엔 우리 젊은 세대를 향한 야당의 선거전략으로 보였으나, 사실은 이것이 한국 국가안보전략정책을 북의 적화전략에 호응케 하는 유화정책으로 몰고 가려는 북한과 종북좌파세력의 책략임이 분명하게 들어난 것이다. 문제는 매일 눈만 뜨면 "쳐 들어오겠다"고 으르렁거리는 적 앞에서 남한의 안보상황을 믿지 않으려는 국민 20% 이외에 젊은이들까지 적의 유화근성에 깊이 빠져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들은 북이 재침공하여 6.25 때와 같이 단 기간에 서울을 점령하고 협상을 제의하면 여기에 호응하여 항복하거나, 한강이북 분할 또는 연방체제 등의 협상을 통해 전쟁 없는 평화를 유지하자는 적의 유화근성에 동조하거나 전국적 반란이나 시위를 할 수 있는 수위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곧 북으로 하여금 이들(남한의 유화세력)을 믿고 재 남침을 시도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내부 유화세력의 문제는 이제 우리 대한민국의 존망과도 직결되는 문제로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차제에 敵前에서 우리 역사에 있었던 유화근성(유화정책)으로 인해 망국의 역사를 기록한 대표적인 사례와 교훈을 알아보고 오늘 우리사회의 좌파종북세력들의 유화근성을 분석, 그 대응책을 논의해 보기한 한다.

5천년 우리 한국흥망사를 통해 본 대표적 유화정책과 유화근성

우리 한국민족의 자랑이던 고구려가 건국이후 단군조선의 영토수복을 위해 '다물전략사상'을 국시로 '부국강병전략'으로 번영하던 때, 특히 390~400년대 초, 광개토대왕은 저 멀리 서역의 돈황 방향으로, 그리고 하남(황하이남 즉, 백제-신라)방향으로 원정하여 동아시아대륙에서 대제국으로 군림하였으며, 그 뒤를 이은 장수왕과 그 후대는 차이나(支那, China)가 분열했던 5호16국시대 말기에 북위(北魏)를 통해서 약 200년간 중원을 지배하였다. 그러다가 수(隨)가 중원을 통일하고 그 여세로 고구려를 3차에 걸쳐 침범하자 [바보온달장군 얘기]와 같은 일전불사의 국민안보정신으로 이 모든 침략을 격퇴(특히 을지문덕의 전쟁지도)하고 수를 망하게 하였다. 뒤를 이은 당태종은 재침략을 준비하는 한편, 이를 위장하기 위해 고구려와 화친을 가장하였다. 이에 따라 고구려에서는 소위 당화친파(唐和親派)의 당리당략 - 이때부터 고구려국민의 유화근성이 싹 트다. - 에 의해 유화정책이 거론되면서 천리장성 등의 전쟁대비전략정책이 흔들렸다.

그래서 일전불사의 전략사상을 가진 연개소문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일전불사의 방어태세가 재확립되었다. 645년에 당태종이 고구려를 재침하자, 연개소문이 국가안보를 지도하고, 일선의 양만춘장군이 안시성에서 선방하자, 연개소문은 후퇴 도주하는 당태종을 만리장성까지 추격하여 혼을 빼 줌으로써, 당태종은 돌아가 죽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여년이 지나자 당은 나-당동맹군으로 먼저 백제를 멸망시키고 그 기세로 고구려를 또 다시 661년부터 파상적으로 수차례 침략해 왔는데, 그때마다 연개소문장군에 의하여 고구려는 이들을 전멸시키거나 격파하였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사거하고 그 지도력이 쇠퇴하자, 적전에서 국론이 유화(평화구걸反戰)파와 주전(일전불사)파로 분열되다가 급기야는 문약해진 유화매국파의 적전반란으로, 668년에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는 멸망하고 말았다. 멸망한 고구려 유민들은 수세기동안 여진족이라는 굴레를 덮어쓰고 천대받다가 만주와 연해주 그리고 중원의 우리영토와 함께 소멸되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소위 동북공정으로 그나마 흔적조차 없어지려하고 있다.

고려시대 말기 군사집정정권은, 고려-몽골 30년전쟁에서 세계를 휩쓸고 있던 몽골과 7차례이상의 침공에도 불구하고 방어지구전에 성공하였는데, 이는 일전불사의 국민항전태세와 삼별초의 결사항쟁덕분이었다. 그러나 고려조정은 자신들의 생존과 몽골에 인질된 왕족들의 안위를 위해서 그리고 부원세력(附元勢力)들 즉 유화세력들에 의한 평화선동에 의해서, 그리고 그동안 왕권회복을 노려 온 문벌귀족(門閥貴族)과 문약한 문벌관료(文閥官僚)들의 유화정책에 의하여 100년의 최씨군벌집정체제를 전복(1258년)하고, 왕정으로 복귀함과 동시 몽골에 항복함으로서 또 하나 5천년 민족수치의 [화냥년(還鄕女)]의 나라로 망해가고 말았던 것이다.

이씨조선에 들어 와서도 우리가 잘 아는바와 같이, 임진왜란을 자초한 선조와 서인들은 '왜침략에 대한 조사단의 보고'를 받고도, 그동안 자신이 취한 잘 못된 평화주의전략정책(10만 양병부정 등)을 부정할 수 없어 '전쟁은 없다'고 재강조하면서 방어준비를 부정하고, '허구의 평화'를 위한 유화정책으로 일관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임진왜란이라는 민족적 대재앙을 자초하고 말았던 것이다.

또 하나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 중세사에서 국치의 일제식민지 36년의 노예생활이 바로 100년전 고종의 유화정책과 매국노들의 유화근성에 연유했다는 사실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1860년대 한국은, 연소한 고종을 대리하여 흥성대원군이 정권을 장악하고(1963~74) 부국강병전략사상에 기반을 둔 국가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는 세도정치(勢道)를 혁파하면서 의정부제도(文務)를 부활함과 동시에 군무(軍務)담당 삼군부(三軍府 ; 현 합동참모부)와 유사시를 위한 순무영(巡撫營 ; 전방전투사령부)을 설치하여 군사와 정치의 균형을 도모함과 동시에 이들을 장악하여 예상되는 서세동점의 제국주의열강세력들의 침략에 '위정척사(衛正斥邪)의 국가안보전략사상'으로 대비하였다.

대원군이 남침하는 러시아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불란서세력(카톨릭)을 이용하려다가 오히려 쿠데타의 위험에 처하자 해결책으로 병인사옥(丙寅史獄)을 일으키게 되었고, 이로 인해 불란서제국이 강화도를 기습침략 해 오자 대원군은 그야말로 일전불사의 의지로 "화친허락은 매국이고 교역허락은 망국이며 도성은 절대 방어할 것이며 적과는 협상치 않을 것이며 반드시 싸워 패퇴시킬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는 그 즉시 순무영을 설치하여 불란서침략군을 격퇴(병인양요;丙寅洋擾, 1866)함으로서, 강대국과의 방어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상비군제도(長番兵)와 총위영제도 설치 등 서울을 최종거점으로 하는 전국방위전략을 수립하고, 문약(文弱) 원인 중의 하나인 향약이나 서원 등 양반근성의 본원을 타파하고 향토방위제도의 하나인 사창제(社倉制)와 민보령의 실시, 그리고 특히 해안거점방위전략(예 ; 강화도 등)을 강화하였다. 동시에 마치 푸르시아 영웅재상 비스마크와 같이, 국가보위를 위한 국민인내를 호소하며, 군포(軍布)확대부과와 당백전발행 등을 통해 군사력을 증강해 나갔다.

그러던 중,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여, 미국이 '포함외교'의 일환으로 최강 해병대로 강화도를 침범하자 대원군의 일전불사전략사상영도하의 결사수비대는 열세의 무력으로 결사항쟁 - 미 해병대 전투상보기록 - 하여 이 침공군을 격퇴하였다(신미양요;辛未洋擾, 1871). 대원군은 일전불사의 위정척사(衛正斥邪)사상으로 국민을 고무시킴과 동시에 국민으로부터 필수불가결의 '피와 땀을 요구'하여 국가와 국민은 물론 반만년의 우리역사를 지키려고 노력하였고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정권을 환정 받은 고종은 위정척화(衛正斥和)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구파와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을 주장하는 개화파 사이에서 민씨세도족벌정치를 재개하며 부국강병⋅자수자강(自守自强)의 전략사상을 버리고, 외세의존전략사상(異以治異전략사상)으로 이조왕권수호만을 위한 국가운영을 시도하였다. 대원군의 안보전략과 군사력강화제도를 부정하고(서원복설, 호포제폐지, 민보제 무실화, 군사기 무관심, 원납전 폐지 등), 그나마 건설 중이던 군사력을 감축하면서 강화도 진무영 등의 방위체계를 해체하는 등, 결과적으로 군과 국민의 유화근성을 조장하게 됨으로서 물심양면으로 국가안보태세를 약화시켰다. 그리하여 일제의 '운양호침략'(1875~6)을 맞이하여 방위군은 무저항에 적전 도주의 국방수치를 연출하고, 고종은 유화정책을 펴지 않을 수 없어 불평등의 '강화도 조약'을 강요당함으로서 바로 망국의 첩경으로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바로 현대사에서는 미국의 유화정책에 따른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의 결말을 비교하며 예로 들 수 있다. 한국의 6.25남침적란에서 이승만과 우리국민들은, 현 휴전선에서 정지하지 말고 이 기회에 북진을 계속하여 후환이 없는 반공통일을 완성하자고 소원하였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유엔연합세력이 국제전략적 이유와 함께 4년간의 전쟁염증 등으로 유화전략사상이 점증하여 유화정책을 통해 억지로 휴전을 성립시켰다. 이에 이승만대통령지도하에 일전불사의 전략사상으로 무장되었던 우리 국민들은, 차선으로나마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는 등, 당시의 국제공산주의 혁명세력들의 한반도 돌파와 적화전략을 반공으로 저지시키는데 성공하고, 그 바탕위에 오늘날과 같은 국가와 민족의 부흥을 위한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월남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유화전략사상 즉, 미국이 공산진영과 '데탕트 모드'로 들어가면서 키신저 주도로 소위 '월남평화/휴전회담'을 통해 협정을 체결(1973)하고 미군과 한국군이 철수하였다. 그러자 월맹은 '담담타타(談談打打)'의 공산주의전략과 월남내의 베트콩(Vietnam-Communist)에 의한 분란전략(紛亂戰略)을 극대화하였다. 당시 시민·종교단체를 장악한 좌파종북주의자들은 천주교신부와 불교스님들을 내세워 「구국(救國)평화회복 및 반부패 운동세력」이라는 단체를 결성해, 산하에 사이공대학 총학생회를 비롯하여 100여 개의 종북시민단체들과 수십 개의 언론사들이 시민연대를 구성하고, 중심 곳곳에 위장취업한 골수 좌파종북주의자들의 선동에 의해 총체적인 반정부·반체제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월남은 사실상 월맹의 총공세와 이에 호응한 베트콩의 게릴라전에 패배하기 이전에 이미 이들 종북좌익단체의 선전선동과 분란전에 국가사회질서의 통제력을 상실하고 속수무책으로 정복당하고(1975.3~4) 말았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월남은 중공 등 공산진영의 분열을 이용한 미국 키신저의 소위 데탕트전략사상 즉 유화정책(전략사상)과 월맹공작에 의한 월남 자체내부의 유화근성이 확산되어 패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현재 한국 유화책략의 근원지는 바로 북한이다

현재 한국 국민의 유화근성은 좌파종북주의자들의 노예근성, 거지근성, 안주근성에서 나온다. 지금 바야흐로 좌파종북주의자들(심지어는 사교육강사까지도)의 그 적전 유화근성에 의한 반전(反戰)운동이, 그리고 종북좌파정당들의 적전 유화근성에 의한 유화정책정강이 망국의 두려움을 모르고 온 길거리에 펄럭이고 있다. 그래서 그것이 곧 유화정책이 되어 적을 전쟁으로 유인하고, 북이 남침시는 항복으로 대한민국을 패망케 하고, 우리민족을 또다시 극한의 도탄에 빠뜨리려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러한 망국의 현상이 과연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북의 소위 '건당건국'이후의 시종일관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대남적화전략과 공작전술에서 유래한 것이다.

모략전(Unconventional Warfare)의 원리에는, 국가간 공작에 있어서 그 영향은, 지정학적으로 국경선이 일단 바다 등으로 단절되어 있는 국가간에는 쉽지 않으나, 국경이 육로로 접해있는 국가간에는 용이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전파된다고 하였다. 일직이 차이나(China, 중공)가 인도네시아방향으로 진출하려하였으나 실패하였는데, 월맹에서 월남으로의 진출은 성공하였고, 북한 역시 대남공작에 성공하여 지금은 바야흐로 그 확산단계가 절정에 이르고 있는 현상이다.

최근에 북한은 특히 인터넷, 이 메일, 댓글, 포털, 카페, 트위터 등으로 일상의 주요첩보를 주로 습득하며 생활하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해, 전문적인 인터넷 전사들을 대규모로 투입하여 공개 비공개와 합법 불법을 불문하고 공작지령하달은 물론 날조된 유언비어를 난무시키는 등으로 우리 사회 내부를 교란하고, 동시에 이 노선에 따르는 종북좌파세력을 세뇌공작하고 있다.

강성대국의 지도자와 국민들의 일전불사(一戰不辭) 의지 있어야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일제의 강제합방을 저지해 달라는 고종의 사절 이승만에게 "한국은 적에게 한방의 주먹도 날리지 않았지 않느냐" 고 말했다. 자수자강의 의지 없는 국가를 누가 도와주랴. 일전불사의 각오 없었던 대한제국의 망국사가 100주년을 맞이한 이때 새삼 이 민족의 가슴에 뼈저리게 와 닿는다. 그런가 하면 제2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수상 처칠은 "사악한 자의 악의는 선한 자의 허약함 때문에 강화된다" 고 하면서 전임자의 유화정책을 비판하고 국민에게 피와 땀을 요구하며 강병전략으로 전시국가를 지도하였다.

또한, 2차대전후 세계 유일강대국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해 온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는 최근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말하기를,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 인본주의적 근거에서도 힘의 사용은 정당화 된다..... , 우리가 어떤 실수를 했든 분명한 것은 미국이 60년 넘게 국민의 피와 군사력으로 세계안전보장을 도왔다는 사실이다. 우리 군의 희생이 독일에서 한국까지 평화와 번영을 증진시켰다"고 했다. 이를 오바마의 '정의로운 전쟁'(just war) 또는 '평화를 위한 전쟁연설'이라한다.

유화근성의 뿌리를 근절하고 자주국방에 국력을 집중하자

이제 다시 망국의 비극적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당장에 장단기간의 국가안보전략을 계획하고 실천해야한다. 당장의 과제로는, 북의 대남적화전략전술의 봉쇄이다. 방어적으로는 북의 대남지령의 인적 기술적 봉쇄를 비롯하여 공개적 비합볍적 종북망동분자들을 거세하고, 동시에 효과적인 국민계몽과 저항운동을 전개하여야한다. 그리고 공세적으로는 대북방송과 전단살포 등의 심리전, 평화체제와 군축 및 군비통제 등의 능동적 제안, 그리고 대가성 경제지원 등 평화공세의 전개이다. 군사적으로는 물론 최소 1 : 3 이상의 보복규칙을 철칙으로 확립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국민교육의 개혁이요, 정치사상의 개혁이다. 대통령은 병력을 필한자랴야 하고, 국회는 민주사상에 입각한 다수결원칙의 의회민주주의를 확립해야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교육개혁으로, 현재 국민교육목표는 초등학교의 '진⋅선⋅미'가 모두이다. 그 결과 국경일에도 태극기는 2~3/50 가구에만 매달려 있을 뿐이다. 앞으로는 세계적으로도 부러워하는 여권을 가진 국민답게 국가에 충성하고 군대에 애정을 갖는, 그리고 민주주의질서존중을 우선하는 가치로 교육되어야한다. 초등학교개념을 국민학교개념으로 전환하고, 올바른 국사교육의 필수화와 함께 전교조의 종북교육을 봉쇄하고 근절시켜야 한다.

우리 군대는 이제 군사혁명(Military Revolution)과 동시에 군사개혁을 단행해야한다. 첫째는 주적개념과 민주주의 이념의 확립이다. 그동안 특히 15년여, 날마다 "서울불바다, 전면전, 뭉게버리겠다, 진짜 전쟁 맛을 보여 주겠다"고 하는 적과 대치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적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참으로 믿지 못할 한 시대가 있었다. 특히 친북좌파 10년간 주적을 잃어버린 군대에 유화근성이 깊이 침투한 탓이리라. 군대는 결코 소위 신세대를 위한 체력미화장이나 게임장은 물론 아니고 마마보이들의 보육원도 아니다. 군대의 본분은 피땀 흘리는 위국헌신의 도장이요, 명실공히 국가 최후의 보루이다. 전교조의 종북교육으로 의식화된 젊은이들을 선도하고 국민들을 애국충성으로 계몽하여 유화근성을 근절시키고, 국가유사시 즉, 적의 침략이나 국내비상시 국력을 동원하여 우리나라를 망국으로부터 구출해야하는 국민군대가 될 수 있도록 개혁되어야한다.

동시에 중요한 군사개혁은 바로 2015년까지의 '자주국방태세완비'이다. 우선, 평상시 전투와 국지전은 물론, 전면전 초기 최소 3일에서 1주일을 완전히 자주방위할 수 있어야하고, 이후 동맹군에 의한 연합작전체제로 반격으로 전환할 수 있는, 이 정도가 그래도 제1단계 자주국방 목표가 되어야한다. 그러기에 한-미동맹체제는 발전적으로 유지되어야하고, 그동안 전시 '한-미연합군체제'는 평시에도 연습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가 2015년까지 자주국방의 군비를 완비해야한다. 결코 말로만 자주국방태세가 완비되는 것은 아니다. 엄청난 군사예산을 절대로 확보해야한다. 정부는 물론 특히 자주국방을 선언하여 한미연합사해체를 의결하고 입법한 이상, 국회는 방위세와 같은 특별목적세를 신설하는 등, 책임지고 예산을 확보해 주어야한다. 정부는 당면 국가예산운영 우선순위를, GDP 6%로 초중고 냉난방실내체육관과 학생전원무상급식에 투자하기에 앞서, 2%내외로 심지어는 장병 육식비(肉食費)까지도 삭감해 가며 2015년까지 자주국방을 완수해야하는 국방예산에 GDP 최소 6% 이상규모의 배정우선을 두어야 자주국방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될 것임을 알아야한다.

한편 국방부와 군은 당면한 적이 북한임을 재인식하고, 핵무기를 제외한 현재 비대칭무기장비를 포함한 모든 군비를 역전시켜 유연전략전술과 함께 상대적우위로 대응할 수 있어야하고, 유사시 전개될 미동맹군과 협동작전이 가능한 수준의 군비와 무기체계를 항시 유지할 수 있어야한다. 그래야 진정한 자주국방군이 되는 것이다.

국방부는 국민과 국회의 지원을 받아, 국가군사안보전략을 잘 이해 못하는 실무공무원이 장악하고 있는 정부예산을 필요한대로 확보하는데 능동적으로 최선을 다 해야 한다. 그리고 안으로는 대양해군(독도함 등 3천톤급이상의 함정)이나 전략공군(공중급유기 등)사업 등은 후연하고, 고속유도탄함정과 고속부양정 그리고 탱크킬러 등 영해연안과 영공방위무력에 우선하여야한다. 그래서 전작권 전환이 이뤄지기까지 주어진 5년 내 기어코 자주국방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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