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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선교 선구자 ‘올링거 선교사’ 기념비 양화진에 서다
삼문활판소 배재학당 내 설립…<누가복음젼> 및 여러 전도문서 출간
2010년 06월 09일 (수) 15:11:23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국내 문서선교와 출판문화 근대화에 선구자 역할을 한 프랭클린 올링거 선교사의 기념비가 4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세워졌다.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이사장 강병훈)는 4일 오전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올링거 선교사 기념비 제막식을 개최했다.

1888년 1월부터 1893년 9월까지 한국에서 선교사로 사역한 미국 북감리교 출신의 선교사인 프랭클린 올링거 선교사는 기독교교육과 성경 출간 등 문서선교에 큰 기여를 했다.

이번 제막식은 올링거 선교사가 한국에서 사역하던 중 편도선염으로 세상을 떠난 올링거 선교사의 두 자녀 버티와 윌라가 묻힌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올링거 선교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취지에서 개최됐다.

이를 위해 협의회는 올링거 선교사의 4대손 데이비드 올링거와 메일을 주고받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두 자녀가 묻힌 위치를 알아내는 절차를 거쳤다.

이날 제막식은 데이비드 올링거 부부를 비롯해 올링거 선교사가 한국선교 시 관여했던 감리교ㆍ배재학당ㆍ내리교회ㆍ대한기독교서회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날 예배에서 말씀을 전한 강병훈 목사(100주년사업회 이사장)는 “우리나라가 복음화율이 높고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나라가 된 것은 올링거 선교사와 같이 한국 땅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린 선교사들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올링거 선교사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졌을 때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하나님의 귀한 사람 이었다”고 설교했다.

정용섭 장로(100주년사업회 사무총장)는 “올링거 선교사는 한국에서 있었던 기간은 짧지만 그가 이룬 선교업적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획을 그었다”면서 “특히 성경번역, 교육 등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룬 올링거 선교사의 기념비를 제막하게 된 것은 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에 있어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올링거는 “증조할아버지께서 한국 선교에 이렇게 큰 업적을 남기신 줄은 미처 몰랐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돼서 무척 놀랍고 감격스럽다”면서 “뜻 깊은 자리에 초청해 주신 협의회에 감사하고, 자손 대대로 올링거 선교사님의 업적을 기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올링거 선교사(1845~1919)는 미국에서 독일계 이주민의 후예로 태어나 저먼-왈라스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1870년부터 17년 동안 중국 복건성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다.

그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요청으로 1888년 조선에 미국 감리교 선교사로 들어와 약 6년 동안 배재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인쇄소인 삼문활판소를 배재학당 안에 설립했고, <누가복음젼>을 비롯한 성서와 여러 전도문서를 출간해 기독교 문서선교의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90년에는 대한기독교서회의 전신인 조션셩교서회를 조직해 초대 회장을 맡았고, 국내 최초의 영문잡지와 월간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올링거 선교사는 한국 최초의 교회 중 하나인 인천 내리교회 개척에도 아펜젤러 선교사와 함께 관여했다.

올링거는 한국 선교 6년째인 1893년 5월 말경, 두 자녀를 병으로 한꺼번에 잃는 아픔을 겪었다. 양화진에 묻힌 올링거 선교사의 12살짜리 아들 버티와 9살짜리 딸 윌라는 조선에서 사망한 최초의 서양 어린이로 기록된다.

올링거 선교사는 그해 9월 한국을 떠나 잠시 귀국, 1895년에는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 1911년까지 선교사로 헌신하다가 은퇴했다. 1919년 사망해 톨레도 우드론 공원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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