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은

민심은 무서웠다. 성난 파도처럼 한나라당을 덮쳤다. 16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7곳을 민주당이 장악하고 한나라당은 6석을 건지는데 그쳤다. 한나라당 텃밭으로 불렸던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이광재 후보는 20%가 넘는 초반 지지율 격차를 극복하고 당선됐으며, 경남도지사 선거에서도 야권 후보로 불린 김두관 경남도지사 후보가 극적 승리를 일궈냈다. 또한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한명숙 후보와 오세훈 후보는 개표 막판에 선두가 뒤바뀔 정도로 선거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선거로 기억될 정도였고 그 충격은 대단했다.

천안함 사건이라는 큰 이슈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완패’라 불릴 만큼 이번 선거의 결과는 보수민주진영 전체에게 위기감을 안겨주었다. 사실 이러한 결과를 예측한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선거 당일 여론조사결과와 출구조사결과가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혹자는 20대 젊은이들의 트위터 선거와 좌파세력의 ‘단결’을 한나라당 완패의 첫 번째 요인으로 꼽고 있는데 이에 덧붙이자면 여당과 청와대의 안일한 ‘방심’도 패배의 원인이라고 들 수 있겠다. 특히 보수진영의 분열은 똘똘 뭉친 좌파세력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좌파세력들은 ‘진보’라는 미명 하에 단일화 협상에 들어갔고 80여석이 넘는 제1야당인 민주당의 경우 단 한 석도 현역의원이 없는 ‘국민참여당’에게 까지 연대를 제의할 정도였다. 또한 국민참여당의 경우 시장이나 군수선거에 어울릴 후보들이 구의원에 나서는 등 상상을 초월한 선거 전략을 짰다. 그러다보니 보수후보들이 복수 출마한 교육감이나 교육의원 선거의 경우 거의 대부분 지역을 좌파 세력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고 말았다.

또한 구의원이나 시의원, 단체장의 경우에도 한나라당의 경우 복수후보가 출마하고 공천 탈락자들이 다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표가 분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좌파세력들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정권 심판론’에 대해서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서울시장 까지도 그들에게 넘겨 줄 뻔했다. 오죽하면 선거 당일 밤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서울광장으로 인파를 모아놓고 ‘당선자’인양 출동하는 해프닝은 차치하더라도 텔레비전 인터뷰까지 했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이제부터 당선자 신분으로 활동 하겠다’는 황당한 얘기가 전해지기도 했다.

지난 10년간 국정파탄과 ‘북한 퍼주기’등으로 수세에 몰렸던 좌파세력들에게 또 다른 활로를 열어 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거의 충격은 컸다.

특히 그동안 ‘선거의 여왕’이라고까지 불리던 박근혜 전 대표는 지역구에 상주하면서까지 선거운동을 했지만 결국 그도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자신의 계파인 ‘이계진’ 강원도지사 후보가 ‘직무정지’의 위험을 무릎 쓰고 출마한 이광재 후보에게 밀려 강원도에서 ‘민주당’ 당선자를 처음으로 배출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박전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매우 좁아졌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번 지방선거가 민주당의 압승 형태로 나타났지만 전남지역에서 8군데 이상 무소속 후보가 이긴 것은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전통적 지지자들의 실망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당에 압승을 선사했지만 동시에 민주당의 안방에서 회초리를 들었다. 기대와 반성의 메시지를 동시에 던진 셈이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다시 화려하게 부활한 친노세력은 ‘대안부재’의 한국정치 현상에 따른 부산물이다. 친노그룹이 선거 결과를 자신들에 대한 면죄부로 해석할 경우 친노진영의 정치적 생명은 그만큼 짧아질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교계라고 할 수 있겠다. 교계의 대다수 목회자들이 선거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문제는 정작 이겨야 할 선거에서 조차 교계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심지어 손양원 목사 기념사업과 관련이 있는 여수시장선거에서 조차 교계가 지원한 현역시장이 패배를 했다. 여수시는 지금 통일교의 약진으로 문제가 많은 지역이다. 통일교는 ‘가정당’이라는 자신들의 정당을 이용하여 국회의원을 배출하려고 하는데 그 방법이 기묘하다. 신도들을 가평이나 여수 지역에 대거 이주시켜 ‘몰표’를 통해 당선자를 배출하겠다는 방침이라는데 이번 선거에서도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는 후문이 전해져 올 정도다.

서울시장 선거 역시 교계 인사들이 직접적으로 캠프에 들어가 유세장까지 동행하는 등 활동을 했지만 결국 ‘신승’을 했다는 점에서 그 정치적 위험성은 크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전체 득표수를 따져 보면 여당의 득표수가 야권연대 후보들의 득표수보다 월등히 많이 나왔다. 하지만 교계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한 선거치고는 그 성적표가 시원찮다는 점에서 교계의 후보들이 대거 낙선하도록 방관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지금과 같은 상황을 겪었던 전례가 있었던 만큼 이번에는 방심을 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고 교계가 직접적으로 선거에 개입해서도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정치적 성향의 교역자들이 필요 이상의 개입을 했다.

개별 전투에서는 승리를 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전쟁에서는 졌다. 그러나 이런 패배가 전체 보수민주진영의 침체로 이어지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심기일전해서 다음 재보선과 대선, 이후 총선까지의 정치일정을 잘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비판은 이쯤에서 끝내자. 지금은 다음을 위해 모두가 단결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