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9.10.30 수 09:50
 
로그인 |  회원가입
 | 전체기사보기 | 기사제보
특별자치도, 지방선거
> 뉴스 > 뉴스 > 설교
     
오늘의 선한 사마리아인
설교: 진동은 목사 / 눅 10: 25~ 37
2016년 09월 09일 (금) 11:52:24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이태리와 미국은 패션모델의 연령을 16세 이상으로 제한했고, 또 키가 175인 경우 55킬로그램은 넘어야 한다는 규정을 정했답니다.
이렇게 한 것은 모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모델들은 정상 체중 이하입니다.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런 운동은 바람직하다고 보겠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정상적인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모델들이 지나치게 마른 사람들 위주다 보니까 정상인들도 말라야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은 지나치게 다이어트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삶을 위해서는 올바른 모델이 필요합니다. 그 모델이 잘못되면 본받고자 하는 사람들의 삶도 잘못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눅 10장 후반에서 11장까지의 말씀은 진정한 제자의 삶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이 따라야 할 바람직한 모델을 보여주셨습니다. 본문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도 이 중의 한 가지로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본문에 잘못된 모델로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제사장이고 다른 하나는 레위인입니다. 이들은 모두 성전에서 일하는 성직자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보자로 백성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남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전형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도 만난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돕지 않고 외면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헌신한다는 사람들이 정작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외면해 버리는 모순을 드러내고 만 것입니다.
도대체 저들은 왜 그랬을까요?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겠습니다.
우선 성전 밖이어서 그랬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들은 성전 안에서만 헌신토록 서원한 사람들이라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두려워서 그랬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직자들은 세상일에 경험이 많지 않아서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두려워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정해서 그랬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직자들이 사연 많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하도 많이 겪다보니 절박한 위기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 타성에 젖고 무정해 졌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예수님께서 지적하고자 하신 것은 무엇일까요?
이들의 어떤 점이 잘못된 모델로 퇴출 명령을 받게 된 것일까요?

레 21장 이하를 살펴보면 제사장과 레위인들 곧 성직자들이 성전 임무를 잘 수행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정을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히 시체와의 접촉을 금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피 묻은 몸도 접촉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본문의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런 상황 하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철저하게 훈련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두 사람은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지 말라고 훈련 받은 대로 행한 것입니다. 만일 이 두 사람 말고 다른 제사장 또 다른 레위인이 지나갔어도 다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을 잘 섬기려는 의도로 하나님의 백성의 절박한 상황을 외면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앞세우면서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이웃 사랑을 외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분리해 놓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하나님 사랑을 핑계로 이웃 사랑을 면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랬기 때문에 유대인들도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저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한 모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 사회의 풍조는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이 점을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뜻밖의 사마리아사람을 새로운 모델로 제시하셨습니다.
왜 사마리아인이었을까요? 간단합니다.
저들은 기존 유대인들처럼 율법 조항을 왜곡해서 해석하는 풍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피 흘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도 부정해 질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양심 따라서 도울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시려 하신 것입니다.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일 4:7-8 말씀을 다시 기억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그리고 요일 4:20-21도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그러면 이제 예수님께서 새롭게 제시해 주시는 모델 선한 사마리아인의 특징을 보다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따라 우리가 오늘의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누군가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본문 29절을 보면 율법사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면 자신이 도와야 할 이웃은 누구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도와야 할 사람들을 따져보고 돕겠다는 태도입니다.
내가 도울 만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자세히 살펴보고 돕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본문에 나오는 두 모델 곧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이런 일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우선 이방인들은 도울 수 없었습니다.
율법에 도우라고 명시되지 않은 사람들은 도울 수 없었습니다.
저들은 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그 사람을 도와도 되는지 여부를 따졌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지금 강도 만난 사람이 누구냐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의 다급함과 필요만 보았을 뿐입니다.
당시 역사적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사마리아인이 유대인을 돕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오랜 세월 무시를 당해왔고 심지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해왔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라면 치를 떨 정도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이 사마리아인은 그런 편견과 민족 감정을 뛰어 넘어서 돕고 있는 것입니다. .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을 쓴 코리텐 붐 여사의 간증 한토막입니다.
이분은 2차대전 때 유대인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라벤스부룩이라는 수용소에 감금되어있었습니다. 가족들은 수용소에서 다 죽고 독일 패전 후 자신만 겨우 살아나오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살아나왔을 때 그는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자기를 핍박하고 가족들을 잔혹하게 죽인 독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순종하며 독일 마을과 도시를 다니며 간증집회를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독일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한 시골마을에서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온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감옥에서 자기 언니를 고문 끝에 죽게 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분노가 치솟아 외쳤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은 안 돼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사랑하라 그것이 내 명령이다” “저는 그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사랑할 용기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명령이라면 해 보겠습니다.”
어느새 그 사람이 자기 눈앞에 다가오자 이분은 그 사람을 끌어안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그녀의 마음속에 부어주셨습니다. 이웃사랑은 사람을 가려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까지 사랑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는 안돼!”라고 사람을 가리지 마십시오. 그 사람이 누군가를 따지지 마십시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오늘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29절을 보면 율법사의 태도에 대해서 누가는 이렇게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이 율법사가 이웃사랑에 나서려 한 것은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하는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본문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들도 이런 풍조에 물들어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 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당시 만연되어있는 이런 풍조에 대해서 질책을 하셨습니다. 1-4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하나님께서 갚으시리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주고 그가 회복되기도 전에 떠났습니다. 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막 주인에게 돈이 더 들면 나중에 돌아올 때 갚을 테니 최선을 다해서 돌봐달라고 당부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역대 퍼스트 레이디들 중에서 가장 존경을 받은 인물은 4대 매디슨 대통령의 영부인 돌리 매디슨입니다. 한 번은 기자가 물었습니다.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이분이 깜짝 놀라면서 대답했습니다. “제가 존경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으려고 노력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성경 말씀대로 차별 없이 사랑하려 했을 뿐입니다.” 아무 것도 보상을 바라거나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베푼 사랑의 결과를 예측한다든지 기대한다면 그것은 참 사랑일 수 없습니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야 말로 참 사랑입니다.
이웃사랑을 했으면 알리려 하지 마십시오. 알려지기를 기대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은밀한 중에 다 보시고 아신다는 것 그 자체를 믿고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오늘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말없이 실천했습니다.
본문에서 문제 제기를 한 율법사는 예수님과 논쟁을 벌이러 왔습니다.
25절을 보면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영생을 신학적 논쟁거리로 삼아 시비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29절에 보면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은 누구니이까?“
이웃사랑에 대해서도 또 논쟁을 걸어옵니다.
우리가 도아야 할 이웃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본문의 제사장과 레위인들도 이 율법사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토론에 익숙하고 논쟁을 일삼는 사람들입니다.

본문 37절을 보면 이 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골자를 알 수 있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자꾸 말만 많이 하지 말고 그대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이 잘못된 모델들의 문제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사마리아인은 달랐습니다. 묵묵히 강도만난 사람을 도왔을 뿐입니다. 사랑을 그저 몸으로 실천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이웃사랑이 몸에 배게 합시다.
주저하고 생각하고 결단한 뒤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행동으로 이웃을 사랑합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오늘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모델을 따라 오늘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할 대상이 누군가를 따지지 맙시다.
사랑한 뒤 일어날 결과를 기대하지 맙시다.
그 사랑이 몸에 배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올 수 있게 합시다.




한기총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한기총신문(http://www.cc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신문사소개 · 기사제보 · 광고문의 · 불편신고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동 189-45 | 전화: 02)395-9151-7 | 팩스: 0303-0144-3355
(주)한기총신문 발행인.편집인: 진동은 | 등록번호: 서울아 01119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진동은
Copyright 한기총신문. all right reserved. mail to ccn01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