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9.10.30 수 09:50
 
로그인 |  회원가입
 | 전체기사보기 | 기사제보
특별자치도, 지방선거
> 뉴스 > 뉴스 > 사설
     
영해(靈海)를 추억하며
2015년 05월 19일 (화) 16:13:42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할 때마다 생각나는 분이 있다. 영해(靈海) 고(故) 신현균 목사님이시다. 그분은 실향민 중 한분이셨다. 황해도 수안 출생에 평양성화신학교, 장신대, 한신대를 수학하셨다. 광복 후에도 전도사 신분으로 월남하지 않고 이북에 남아 목회를 인도하신 분이다. 심지어 6.25 사변 당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셨기 때문에 미군들이 후퇴 당시 신 목사님만 모시고 월남하려고 할 때도 자신은 죽으면 죽었지 남은 성도들을 남겨두고 혼자 떠날 수 없다는 의견을 고수하여 온 교인을 구출, 자유를 찾아 월남한 일화가 있을 만큼 ‘성도’가 우선인 목회자였다.
사실 해방 이전 기독교는 북한에 더 많은 교회와 성직자가 있었지만 김일성과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조선기독교도연맹으로 통합되었다. 이 단체를 만든 자는 평양신학교 출신이며 김일성의 외조부 뻘 되는 강량욱 목사였고, 대부흥사였던 김익두 목사를 회유․협박하여 총회장으로 세웠다. 그리고 이북5도 연합노회 소속 목사들을 잡아다가 고문했으며 교회에 공문을 보내 예배당 정면에 김일성 초상화를 달도록 했다. 심지어 평양장로회신학교 교장이었던 김인준 목사를 연행해 고문하다가 순교하게 했으며 장로회신학교와 감리교 성화신학교를 통합한 후 연맹 부총회장인 김응순이 교장으로 들어와 공산당 시책에 따른 세뇌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1952년 6월 25일자 ‘한국기독교신문’에는 무려 4백 명의 목회자가 희생되었다는 기사가 있었고, 북한에서만 장로교 교역자 240명, 감리교 46명이 순교 또는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참전으로 자신들의 전쟁이 패배했다는 논리로 전쟁 후 모든 종교는 말살 당했다. 지금 평양에 존재한다는 종교시설 역시 가짜다. 6.25 당시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했는데 이 때 월남한 목회자들 중 많은 분들이 북에 성도들과 그리운 교회를 남겨두고 월남한 것에 대해 마음 아파했다. 돌아가신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도 늘 마음에 담아 두고 사셨고 이 때문에 호국보훈의 달이 돌아오면 더욱 생각나는 분이 계신다면 아마도 신현균 목사님이실 것이다.
요즘처럼 목회자의 교권이 실추된 한국교회에 그 분만한 배짱과 사랑, 그리고 소명감이 남아 있기는 한 걸까? 만약 실제로 북한이 도발을 감행한다면 몇 명의 목회자가 자신들의 양과 성전을 지킬 것인가? 몇 년 전 대한민국 전역에 전쟁 공포가 있었을 때의 일화다. 모두들 고국을 등지고 떠나려고 웅성거릴 때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장기 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것이다. 이때 많은 국민들이 안심했다. 세계 정상급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돌아왔다는 것만으로 국민들의 동요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신 목사님의 목자로서의 모범은 큰 부흥과 성장을 가져 온다. 민족복음화라는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분이지만 이러한 토양이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신 목사님의 리더십에 대해 문제를 제기 하지 않았다. 물론 혹자는 신 목사님에 대해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너무나도 지탄 받는 요즘 같은 시절에 신 목사님 같은 분이 몇 분이나 계실까 생각해 보면, 또 목회자들의 온갖 악행과 기행으로 지탄을 받는 마당에 쓴 소리를 해주고 꾸짖을 어른조차 부재한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할 것이다.
신 목사님은 미국 해군 군목학교를 졸업했고 비컨(Beacon) 신학대학에서 목회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군 군목으로 복무하며 초대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설교하셨던 목회자이며 특별히 부흥사로 명성을 떨치셨다. 1977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민족복음화대성회 준비위원장 겸 주강사로 활약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 1백주년선교대회 준비위원장, 88 세계복음대성회 대표대회장, 92세계성령화대성회 대표회장 등을 역임했다. 신 목사님은 특유의 재담, 감동적 예화, 가슴을 파고드는 영적이며 역동적인 메시지를 선포하셨다. 특히 당대의 기독교 최고 목회자로 손꼽히는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님께서 불현듯 신 목사님을 방문하여, "신 목사, 우리 손으로 민족복음화를 일으켜 봅시다. 언제까지 외국의 강사목회자들에게 의지하겠소?"라고 부탁하신 순간은 신 목사님께 커다란 자부심과 변화를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었다.
‘민족복음화’라는 거대한 담론이 여기서 출발했고 북한에 가서 집회를 인도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최근 교계에 이런 저런 추문들이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목회자의 성추행과 성폭행 사건으로 큰 홍역을 치루고 있음에도, 사회적 공분이 고조됨에도 불구하고 직무정지는 커녕 버젓이 추종자들과 개척을 해도 이의를 제기 하지 않는 지경에 놓였다. 게다가 몇몇 원로들은 법정구속 되기도 했고 몇몇 유명 목회자들은 재판중이다. 뿐만 아니라 무리한 건축과 확장, 세습 등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지만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한 것도 사실이다.
과연 이들이 나라가 어려울 때 신 목사님처럼 성도와 함께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또 누란의 위기에서 교회를 지키고 민족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을까? 한국의 기독교가 600만명이 안 된다는 통계자료가 최근에 나왔다. 어쩌면 500만명이 최대 마지노선이 될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나온다. 교회가 사회에서 존경받고 목회자가 사회에 쓴 소리를 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신 목사님 같은 분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양을 사랑하고 그 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더불어 진리 앞에서는 쓴소리도 마다 않는 제2, 제3의 영해 신현균 목사가 나온다면 다시 한 번 한국교회에도 부흥의 계절이 다시 오리라고 확신한다. 더불어 목회자가 존경 받는 사회가 되고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기 보다는 교회가 국가와 사회를 걱정하는 건전한 시대가 오리라고 믿는다.
한기총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한기총신문(http://www.cc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신문사소개 · 기사제보 · 광고문의 · 불편신고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동 189-45 | 전화: 02)395-9151-7 | 팩스: 0303-0144-3355
(주)한기총신문 발행인.편집인: 진동은 | 등록번호: 서울아 01119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진동은
Copyright 한기총신문. all right reserved. mail to ccn01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