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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皇訪韓이 남긴 것들
(진동은 목사)
2014년 09월 15일 (월) 23:07:48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갔다. 대한민국이 온통 ‘비바 파파’를 연호했고 각종 언론들은 ‘교황과 함께 해서 행복했다’고 표현했다. 놀라운 건 국민들의 반응이었다. 교황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도전을 받았다. 그는 말끝마다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아시아 청년대회에 가서는 “깨어 있으라”는 성경말씀을 인용했다. 정치인들과 국민들 모두에게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주문했다. 언론들은 교황의 행보를 ‘힐링’과 ‘위로’ 그 자체였고 ‘울림’이라고 극찬 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행복’하지 않은 두 부류가 있었다. 한 부류는 교황이 보다 더 적극적인 ‘정치개입’을 하기 원했던 종북세력들과 교황을 단순히 ‘적그리스도’로 규정한 개신교 일부였다. 우리나라 천주교에는 좌파성향의 사제들이 많은 까닭에 세월호 단원고 유족들, 쌍용차 해고자,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자들, 밀양 송전탑 반대자들 등을 계속해서 교황과 접촉시켜서 뭔가 정치적인 발언을 유도하고 대한민국 정부를 흠집 내려고 했지만 교황은 정치적 중립과 사제로서의 ‘위로’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만 충실했다. 시종일관 그가 원칙을 지켰던 까닭에 다시 교황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혼란이 없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 마케팅‘으로 일관한 개신교 일부는 끊임없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이들은 가톨릭이 이단이며 과거사를 사죄해야 하고 교황청은 음녀의 소굴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요한계시록 해석‘을 그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가톨릭을 이단이라고 단순규정하기에는 신학적인 논리가 매우 빈약했다. 이들의 ’이단‘, ’적그리스도 마케팅‘은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우선 이들의 목소리를 동조하는 국민들이 많지 않아 보였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비난과 믿는 자들에게는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이들이 교황반대 시위를 벌이고 온갖 홍보물들을 나눠줘도 박수쳐주는 이조차 없었다. 심지어 “(가톨릭을 비난하기 전에 개신교)너나 잘 해라”는 비난과 함께 “(개신교에 대한 실망으로)당신들이 전하는 하나님은 믿지 않겠다.”고 까지 말했다. 또한 교황이 날마다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사제의 모습을 보여준 반면 개신교계는 좋지 못한 뉴스만 계속 보도되었다. 교황을 반대하는 이들은 그의 방한이 ‘한국교회의 최대 위기’라고 표현했는데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개신교의 이미지와 사회적 공헌도는 최하위인데다가 불신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교황의 소탈하고 겸손한 행보는 돋보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개신교는 타락한 그리스도교고 가톨릭은 개혁한 그리스도교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사실 가톨릭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에도 계속 ‘종교개혁’을 했다. 이들의 개혁은 매우 강도가 높았고 사제들은 초대교회로부터 전통을 그대로 지켜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다. 사제복 한 벌과 성경을 소유할 뿐이며 성당과 교구를 옮길 때에도 서로 마주치지 않는 행보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각 나라의 전통을 유지 하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조치도 취해졌고 개신교계에서는 덜 이슈화된 낙태문제나 동성애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훨씬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가톨릭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맹공을 퍼붓는 이들의 주장이 빈약해 보이는 건 한국교회가 그만큼 일탈되었다는 얘기도 된다. 붉은 옷과 황금잔을 요한 계시록의 말씀과 빗대어 ‘적그리스도’의 증거로 삼지만 성공회나 루터교회도 그렇게 한다. 또 성경번역을 하면서 ‘하느님’이란 표현을 썼기 때문에 ‘범신론’이란 공격을 했지만 초기 성경 번역은 개신교도 ‘하느님’이었고 또 ‘하느님’이란 번역도 신구교가 ‘공동번역’한 성경이 시초다. 더 나아가 이슬람은 한국에서 알라를 ‘하나님’이라고 번역하고 그들의 서원 벽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표현까지 쓴다. 그들의 경전인 ‘꾸란’에도 ‘하나님’으로 번역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미사 곳곳에 초대교회의 전통을 지킨다. 매주 성만찬을 하며 찬송을 할 때와 말씀을 읽을 때는 일어서서 한다. 오히려 깔뱅의 장로교가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 하여 쭉정이 신자들을 양산해 내는데 비하여 그들은 구원받은 자라고 하더라도 10%쯤은 선행을 해야 한다는 교리를 갖고 있어 착한 행실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한다. 또 한국의 가톨릭은 순교의 역사가 있고 그 중심에는 ‘조상숭배 반대’와 ‘평등’이 있었다. 그리하여 부분적으로 한국의 전통추모의식을 허용하고 있으나 신주를 모시는 그런 제사를 드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적그리스도 마케팅’을 하는 이들은 귀신을 불러 제사를 드리는 줄 안다. 그런 논리라면 개신교계 장로교단 중에 매우 진보적인 어떤 교단의 경우가 더욱 심각하다. 그들은 아예 유교적인 차례도 지내고 굿도 일부 허용한다. 그걸 ‘토착화 신앙’이라며 허용한다. 이들은 교회에 십자가도 걸지 않고 성만찬을 막걸리로 대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신교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이단이라 칭하지 않는다. 교황의 제왕적 군림에 대해서도 그렇다. 교황의 소탈한 행보나 가톨릭의 검소함에 비해 우리 개신교는 어떠한가? 창피하기 이를 데 없지 않은가? 자식에게 교회를 대물림하다가 비판을 받자 사위에게 대물림하기도 하고 요즈음은 사위를 ‘위임목사’로 일단 세웠다가 다시 자기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돌려막기식 대물림’도 성행하고 자녀에게 지 교회를 세워 일단 개척시켰다가 ‘당회’끼리 합쳐 버리는 꼼수도 많이 등장했다. 또 요사이 삼위일체론도 희미해져 가는 게 개신교의 현주소다. 어느새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몽땅 사라지고 ‘당신’, ‘주님’, ‘아버지’로 획일화 되더니 어느 교회에서는 모든 명칭을 ‘주님’으로 통일해서 부른다. 또 요즘 나오는 복음성가에는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한 어떤 언급도 사라진 대중가요인지 성가인지 모를 노래도 쏟아져 나온다. 한마디로 ‘너나 잘하라’는 세상의 비판에 더 할 말이 없어진다. 상처 받은 세상이 교황과 가톨릭에 열광하는 것도, 심지어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교회에 실망하고 목사에게 실망해서 가톨릭으로 옮기는 것도 단순히 ‘적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 왔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적어도 상대를 비판하려면 우리 개신교부터 ‘종교개혁’을 하고 나서 누구를 비판해도 비판해야 옳다고 여긴다.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 개신교계에서 ‘환원운동’이 일어났다. 토마스 캠벨, 알렉산더 캠벨 그리고 발톤스톤 세 목사는 장로교와 감리교로 출신은 달랐지만 개신교 정신으로 건국한 미국이 바른 길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를 소원했다. 이들이 주장한 건 다름 아닌 ‘성경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ible)는 ‘환원운동’(Restoration Movement)이었다. 이들의 또 다른 구호는 ‘본질에는 일치를 비 본질에는 자유를 매사에는 사랑으로’였다. 이들은 예수님 때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었고 이 속에서 베드로를 수장(교황)으로 하는 가톨릭이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지금의 개신교는 제3의 종교개혁인 셈이다. 그래서 교회의 명칭도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다. 이들의 주장은 불꽃처럼 미국 전역을 강타했다. 이들이 설교할 때마다 회복과 부흥의 역사도 있었다. 남북전쟁 이후 갈라졌던 미국이 하나가 되었고 다시 기도하게 되었다. 이들 역시 큰 울림을 얻은 건 바로 검소함과 소탈함, 힐링과 위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예수’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교황의 방한이 한국교회에 던진 물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오히려 ‘종교개혁’의 대상은 아닌가 깊이 생각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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