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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통합의 길목에서
진동은 목사 (한기총신문 발행인)
2014년 06월 26일 (목) 14:50:19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한국교회 130년의 역사를 살펴보면 아름답고 귀한 신앙적 미담도 있고 순교의 역사와 부흥의 감격 그리고 감동이 함께 하는 휴머니즘이 많다. 특히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말씀을 붙잡고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고요한 아침의 나라인 조선 땅으로 건너 온 선교사들의 이야기는 더욱 감동적이다. 그들은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에서 대기 하던 중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 그리고 선교를 위해 도착한 조선은 너무나도 척박해서 많은 선교사들이 순교의 길을 걸어야 했다.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면서도 복음 안에서 깨어나는 민족, 말씀으로 거듭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며 기뻐했다. 민족의 암흑기에도 그들은 함께 싸우면서 ‘민족교회’로서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다가 끝내는 순교로 사명을 마쳤다. 그런데 그들이 하늘나라에서 지금의 한국교회를 바라본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가 성장하는 동안 그 역사의 뒤안길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다. 분열과 반목, 물질만능주의 등도 엄연하였다. 첨예한 대립과 갈등으로 갈라지고 또 갈라지기를 거듭하면서 사회로부터 외면 받고 그리스도의 빛과 영광을 가려 왔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가 점차 세속화 되면서 어느새 교회가 세상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을까? 그 정답은 아마도 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소리가 한국교회에 매우 절실하게 들려온다. ▲네비어스 선교정책 필자가 소속된 교단은 대한 예수교 장로회 ‘백석’측이다. 굳이 소속 교단을 밝히는 것은 전 세계에 유래 없이 대한민국에서만 ‘장로교’가 부흥됐다는 현실 외에도 초창기 장로교 중심의 한국 선교가 결국 분열의 역사를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네비어스 선교정책’이 그 첫 번째 원인이다. 창시자인 네비어스(Nevius, J. L.)의 이름을 따서 "네비어스 선교정책"이라 이름하게 된 이 정책은 오늘날 한국교회 분열의 단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네비어스는 미국장로교 중국선교사로, 1854년부터 상해, 영파, 항주, 산동 등에서 오랫동안 선교활동을 한 노련한 동양선교사였다. 개척선교사들은 어려운 기독교 개척초기에 선교를 위한 도움을 받고자 1890년 6월 네비어스 목사를 한국에 초청하여 그의 선교 경험담을 듣고 토론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네비어스 선교사는 약 2주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중국 기관지 ‘중국보(Chinese Recorder)’에 실었던 자신의 저서인 ‘선교사업의 방안’, ‘선교교회의 설립과 발전’ 등에 정리한 내용으로 강연을 했다. 바로 여기서 정리된 선교의 방법들이 한국 선교사들에 의해 운용되었고, 한국 선교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선교정책을 만드는 기초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그때까지만 해도 장로교에만 국한된 것이었고 지역 분할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폐해를 낳고 만다. 다시 말하면 장로교 나름으로 선교사들의 과열을 막기 위해 지역분할을 했지만 결국에는 타 지역의 선교사나 타 교단의 교회들을 배타적으로 보는 시각이 생겨나 버린 것이다. 특히 ‘기호파’니 ‘서북파’니 하는 계파가 생겨났고 함경도처럼 진보적인 성향의 선교사들이 파송 된 경우 훗날 진보와 보수의 대결구도를 낳았다. 또 네비어스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감리교의 경우는 사회참여에 더욱 적극적이고 학교와 병원 같은 ‘기구’를 통한 간접 선교를 더욱 중요시 여겼다. 그러다 보니 아펜젤러, 스크랜튼 등 감리교 선교사들은 이화학당, 배재학당, 연희 학당 등과 제중원 등을 세워 조선의 근대화에 큰 기여를 하고 이바지 한 반면 장로교의 경우는 ‘교회’를 늘려가고 교인수를 늘리는 일에 더욱 치중하였다. 그러나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많은 단점을 내포 하고 있었다. 게다가 개인자격이 아니고서는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마저도 원천 봉쇄하는 수준이었다. 네비어스 선교정책의 기본정책은 다음과 같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면 그를 떠나지 말고 끝까지 붙들어 그가 개인 전도하는 일꾼이 될 때까지 인도한다. ▲교회의 운영과 기구조직은 그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기획하고 실천한다. ▲교회에서 전도. 재정운영을 감당할 유자격자가 나오면 그를 교회 지도자로 육성한다. ▲교인들 자신의 재정적 능력으로 교회건축을 하도록 유도하며, 되도록 교회당의 양식은 토착적인 형태로 한다.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네비어스 선교정책의 특성은 훗날 이를 연구한 클라크(Clark, C. A.) 선교사에 의해 자력전도(Self-propagation), 자치제도(Self-government), 자급운영(Selp-support) 등으로 정리되었다. 특히 네비어스의 세미나 이후 1893년의 한국장로교선교사공의회는 그 내용에 보다 한국적인 상황을 첨가하여 10가지 선교원칙을 확정, 시행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성직자에게는 고등의 신학을 교육하지 않는 다는 조항까지 들어가 장로교 교육 정책상 유학도 개인자격으로 다녀와야 했다. 그 덕분에 초창기 ‘아빙돈 단권 주석 사건’등 지금 생각해 보면 신학적으로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사안들이 ‘이단논쟁’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송창근, 김재준, 채필근 목사 등은 일본을 거쳐서 미국 유학을 갔고 한경직 목사의 경우 유일무이하게 곧바로 미국에 유학을 간 경우였다. 문제는 또 있었다. 평양신학교의 경우 초창기와는 달리 점점 정통신학 일색은 아니었다. 소장 목사들의 진보적인 참여도 늘어났고 한국 장로교회의 주류는 보수적인 선교사들과 원로 목사들에 의한 교권파가 장악하고 있었지만 신학적인 자유를 원하는 소장파 목사들도 많았다. 이들을 소수의 서북계 원로 목사들과 교권파는 결의문을 내면서까지 억압했다. 물론 장로교 일부는 아직도 선교지역 분할 정책과 네비어스 선교 정책을 통해 불필요한 마찰이나 재정 낭비를 줄이며, 민중 계층을 집중 전도하고 교회 조직이나 운영면에서 효과적이어서 초대교회 성장에 기여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장로교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써 이러한 선교정책이 결국 고신교단이나 기장교단 등 교단분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교회분열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하겠다. ▲개인적인 권한과 이권 또 한편으로 장로교가 한국교회의 분열을 조장한 것은 바로 지금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찬송가’문제다. 한국교회의 양 축이었던 장로교와 감리교는 초창기 각기 다른 찬송가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번역의 문제도 발생했고 연합 집회 시 큰 혼란이 있었다. 이러한 까닭에 1908년 연합찬송가 공동 편찬과 사용이라는 귀중한 ‘연합정신’을 일궈냈다. 그런데 이 정신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게 바로 ‘정인과’라는 인물이 개인적인 권한과 이권을 위해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을 행하던 중 일어난 ‘정 찬송가 사건’이다. 초창기 한국적 찬송가 개발은 역사가 짧았던 까닭에 시기상조였고 서양 찬송가의 번역사용은 매우 어려웠다. 그 이유로서는 한국인의 신앙정신에 맞지 않았고 여러 교파의 선교 교파별 찬송가 기준이 다르고 신학도 달랐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장로교와 감리교가 별도로 ‘찬양가’, ‘찬미가’를 펴냈고 구세군은 ‘구세군가’를, 펜윅의 동아 기독교(침례)는 ‘복음찬미’, 성공회는 ‘성회송가’를 펴내기도 했다. 하지만 장로교의 경우 언더우드의 ‘찬양가’와 마펫의 ‘찬송시’, 감리교의 경우에는 아펜젤러의 ‘찬미가’, 윤치호의 순수 한국인 찬양가인 ‘찬미가’가 존재할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연합 예배의 어려움은 불 보듯 뻔했고 같은 곡의 가사 때문에 생기는 마찰은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혼란을 극복한 것이 1902년 조직된 통합 공의회 찬송가 위원회다. 1908년 연합 찬송가가 탄생하게 되었고 이후 이러한 정신은 계속 이어져왔는데 이후 이권 때문에 찬송가의 연합 정신이 깨지고 1920년대 이후로는 교파주의가 대두되면서 결국 개인적인 이권 때문에 ‘정찬송가 사건’이 터지는가 하면 여기에 지역적 갈등까지 겹쳐서 장로교와 감리교 간의 반목으로 찬송가의 연합정신을 해치고 말았다. 장로교는 당시 서북계와 기호계로 대분되었는데 서북계는 보수 신학을 고수하였고 기호계는 비교적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래서 새롭게 출간된 ‘신정찬송가’의 경우 감리교 집필진과 비교적 진보적인 기호계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편찬한 까닭에 서북계 보수파들이 거부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한국기독교 백년의 큰 성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던 1983년 12월 19일 간행된 한국교회의 오직 하나뿐인 찬송가를 또 분열시킨 장본인도 수많은 신학교와 교단을 만든 것도 모두 다 애석하게도 필자가 속한 장로교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연합정신을 훼손하고 새로운 찬송가를 계속해서 찍어내고 보수와 진보, 지역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 기독교 그중에서도 장로교의 모습이다. 장자교단으로써 또한 가장 교세가 강한 교단으로서 장로교의 역할은 크다고 볼 수 있지만 개인적인 권한과 이권 때문에 한국 장로교가 보여준 모습들은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겠다. 특히나 고려신학교와 조선신학교로의 분열, 여기에 WCC를 둘러 싼 합동과 통합의 분열, 군소신학교의 난립까지 한국 장로교가 통합의 정신을 위배한 사안은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볼 수 있겠다. ▲장로교의 개혁이 통합의 지름길 현재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교단의 난립과 교육기관의 난립, 연합정신을 훼손하는 새로운 찬송가가 계속탄생하며 ‘회장’ 직함을 둘러싼 한국교회 연합기구의 비리와 파행에는 어김없이 ‘장로교’가 빠지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장로교는 계속 분열되고 있다. 또 장자교단이라는 명분하에 교계의 각 기관에서 ‘대표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책임도 동시에 지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문제점은 현재 세계적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고 있는 한국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민교회와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장로교의 ‘패권주의’가 다른 교파의 선교사나 이민교회 분열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또 장로교가 장자교단으로써 특혜만 누리려 하는 바람에 이단들이 거의 대부분 ‘대한 예수교 장로회’라는 타이틀을 차용하기 까지 한다. 그렇다면 한국교회 분열에 대한 해답 역시 ‘한국 장로교’에 있지 않을까? 수많은 교단과 신학교가 난립하고 있지만 이들의 연혁을 보면 대부분 같은 총회 회기를 사용한다. 또 신학교의 경우 마포삼열(마펫)선교사의 평양신학교를 그 뿌리로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한국 기독교의 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한국장로교라는 것이다. 장로교가 개혁하고 통합에 앞장선다면 한국 교회의 미래도 보일 것이다. 우선적으로 뿌리 깊은 지역 갈등이나 진보, 보수 논쟁도 장로교에서 나왔고 연합기구 회장 선거의 잡음도 장로교에서 나왔고 군소교단과 이단 문제, 군소신학의 난립 등도 장로교에서 나왔다. 오늘날 한국보수연합교단은 자체 분열의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1989년 결성된 보수교회 연합기구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 2011년 이후 몇몇 지도자들의 권력욕에 의하여 파행을 거듭하다가 개혁그룹들이 나와 2012년 3월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만들어졌다. 한기총은 다시 2013년 말에 각 교단이 이단시하는 이들의 영입 문제로 예장합동과 고신교단마저 탈퇴하여, ‘한기총’의 보수교회 대표성은 완전히 상실되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평신도들이 야기한 것이 아니라 몇몇 교권욕을 지닌 자들이 초래한 것이다. 대형교회의 편법 세습, 각종 스캔들과 불의한 관행으로 인해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도덕성평판이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러한 문제들을 지켜만 볼 것인가?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진정으로 연합의 시급성과 당위성을 공감해 더 이상 분열하지 말고, 지체 없이 연합기구의 하나 됨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며 연합기구의 하나 됨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절실한 과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우선적으로 한국 장로교부터 통합운동을 펼치기를 주문한다. 원래 깔뱅이 장로교를 창시할 때 그 뿌리가 하나였던 것처럼 기득권을 버리고 조건 없이 ‘하나의 장로교’로 돌아갈 것을 기대하며 소망한다. 만일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향한 역사적인 첫발을 딛는 행보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 통합의 길목에서 진동은 목사 (한기총신문 발행인) 한국교회 130년의 역사를 살펴보면 아름답고 귀한 신앙적 미담도 있고 순교의 역사와 부흥의 감격 그리고 감동이 함께 하는 휴머니즘이 많다. 특히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말씀을 붙잡고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고요한 아침의 나라인 조선 땅으로 건너 온 선교사들의 이야기는 더욱 감동적이다. 그들은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에서 대기 하던 중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 그리고 선교를 위해 도착한 조선은 너무나도 척박해서 많은 선교사들이 순교의 길을 걸어야 했다.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면서도 복음 안에서 깨어나는 민족, 말씀으로 거듭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며 기뻐했다. 민족의 암흑기에도 그들은 함께 싸우면서 ‘민족교회’로서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다가 끝내는 순교로 사명을 마쳤다. 그런데 그들이 하늘나라에서 지금의 한국교회를 바라본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가 성장하는 동안 그 역사의 뒤안길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다. 분열과 반목, 물질만능주의 등도 엄연하였다. 첨예한 대립과 갈등으로 갈라지고 또 갈라지기를 거듭하면서 사회로부터 외면 받고 그리스도의 빛과 영광을 가려 왔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가 점차 세속화 되면서 어느새 교회가 세상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을까? 그 정답은 아마도 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소리가 한국교회에 매우 절실하게 들려온다. ▲장로교의 개혁이 통합의 지름길 현재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교단의 난립과 교육기관의 난립, 연합정신을 훼손하는 새로운 찬송가가 계속탄생하며 ‘회장’ 직함을 둘러싼 한국교회 연합기구의 비리와 파행에는 어김없이 ‘장로교’가 빠지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장로교는 계속 분열되고 있다. 또 장자교단이라는 명분하에 교계의 각 기관에서 ‘대표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책임도 동시에 지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문제점은 현재 세계적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고 있는 한국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민교회와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장로교의 ‘패권주의’가 다른 교파의 선교사나 이민교회 분열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또 장로교가 장자교단으로써 특혜만 누리려 하는 바람에 이단들이 거의 대부분 ‘대한 예수교 장로회’라는 타이틀을 차용하기 까지 한다. 그렇다면 한국교회 분열에 대한 해답 역시 ‘한국 장로교’에 있지 않을까? 수많은 교단과 신학교가 난립하고 있지만 이들의 연혁을 보면 대부분 같은 총회 회기를 사용한다. 또 신학교의 경우 마포삼열(마펫)선교사의 평양신학교를 그 뿌리로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한국 기독교의 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한국장로교라는 것이다. 장로교가 개혁하고 통합에 앞장선다면 한국 교회의 미래도 보일 것이다. 우선적으로 뿌리 깊은 지역 갈등이나 진보, 보수 논쟁도 장로교에서 나왔고 연합기구 회장 선거의 잡음도 장로교에서 나왔고 군소교단과 이단 문제, 군소신학의 난립 등도 장로교에서 나왔다. 오늘날 한국보수연합교단은 자체 분열의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1989년 결성된 보수교회 연합기구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 2011년 이후 몇몇 지도자들의 권력욕에 의하여 파행을 거듭하다가 개혁그룹들이 나와 2012년 3월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만들어졌다. 한기총은 다시 2013년 말에 각 교단이 이단시하는 이들의 영입 문제로 예장합동과 고신교단마저 탈퇴하여, ‘한기총’의 보수교회 대표성은 완전히 상실되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평신도들이 야기한 것이 아니라 몇몇 교권욕을 지닌 자들이 초래한 것이다. 대형교회의 편법 세습, 각종 스캔들과 불의한 관행으로 인해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도덕성평판이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러한 문제들을 지켜만 볼 것인가?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진정으로 연합의 시급성과 당위성을 공감해 더 이상 분열하지 말고, 지체 없이 연합기구의 하나 됨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며 연합기구의 하나 됨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절실한 과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우선적으로 한국 장로교부터 통합운동을 펼치기를 주문한다. 원래 깔뱅이 장로교를 창시할 때 그 뿌리가 하나였던 것처럼 기득권을 버리고 조건 없이 ‘하나의 장로교’로 돌아갈 것을 기대하며 소망한다. 만일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향한 역사적인 첫발을 딛는 행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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