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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가 없다!
2014년 06월 26일 (목) 10:18:12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지난 80년대 시민사회의 두 축은 교회와 언론이었다. 왜냐하면 이들 배경에는 신도, 독자, 시청자란 시민대중이 있었고 이들이 여론 생산층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교회와 언론이 시민대중을 대신 여론을 전달하는가 하면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체크함으로써 균형을 이뤄 산업화 이후 ‘민주화’라는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가톨릭의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가 이런 중심에 있었고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나 작고한 옥한흠 목사 등은 물론 재야인사로 분류되던 박형규 목사, 박상증 목사 등이 나름대로 이러한 여론전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평가된다. 다만 문익환 목사와 홍근수 목사 등 일부 주사파 종북세력들이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든 점은 매우 유감스러운 것이었고 심지어 문목사는 통일이 될 거라는 예언을 했지만 그 자체가 지켜지지 않았다. 어쩌면 당시 보수 쪽 인사들이나 중도 쪽 목회자들이 더 활발한 편이었고 국민의 공감도 받았던 반면 주사파 목사들은 기존의 기독교와 공존할 수 없는 주장을 펼쳐 한국교회의 외면을 받았다. 그 외면의 한가운데에는 기독교의 본질조차 부인하는 ‘이단’적 태도에 있었다.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육적부활 조차 부인하고 기존의 예배는 모두 거부했으며 민중신학이라는 미명하에 기존의 한국교회를 마치 성장병에 걸린 신비주의 집단이요, 독재체제에 대한 옹호세력으로 몰아가기에 급급했다. 이러한 문제는 교회의 ‘갱신’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또 한국교회 대부분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그들의 신앙관에 대해 동의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전 총리인 한명숙 등이 출석하는 ‘한백교회’의 예를 들어 봐도 전태일의 일기가 ‘교독문’으로 둔갑하고 찬송가대신에 민중가요를 부르고 교회행사는 밀양송전탑 행사 같은 정치행사에 몰두하면서 이따금 수위조절이 안될 만큼 친북적 성향을 드러내기 때문에 대다수 성도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그들의 가장 큰 단점은 기존의 모든 교회를 ‘어용’으로 몰고가는 배타성에 있다. 자신들만이 옳다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또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자기 입맛대로 설교에 인용해도 그걸 뭐라고 할 어른이 보이지 않는 다는 점도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논리 또한 빈약했다. 보수나 진보 모두 ‘대한민국을 사랑 하며 나라사랑에는 다를 바가 없다’라는 주장을 펼치지만 대다수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이 지켜 볼 때는 그렇지 않았다. 또 여러 가지 스캔들에 시달리기도 하고 한상열 목사 같은 사람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큰 결함이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반전카드는 존재했다. 다름 아닌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비리에 대한 여러 정황과 증거들 그리고 종북 약점 등을 미리 파악하여 이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저들의 종북행위를 비판하고 건전한 그리스도인들을 비교리화 하는 저들에 대한 견제장치가 사라져 버렸다. 어쩌면 그들의 재정이 모두 보수쪽에서 흘러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언론 역시 건전할 리가 없다. 한국교계의 대다수 언론들이 경영난을 겪다보니 건전한 비판기능은커녕 촌지창구로 전락하더니 급기야 최근에는 영향력을 상실한 골치덩어리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게다가 과거의 순수하던 영향력은 어느새 정치적으로 퇴색 되어 버려서 사실상 이들의 비판기능 상실로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한마디로 교회와 언론이 타락한 것이다. 세상에 대한 견제 기능은 물론 교회의 자정기능까지 상실해 버린 것이다. 기존의 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떠안고 감은 물론 잘못된 길로 가는데도 아무도 그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교회 원로 목회자들이 ‘회초리 기도회’를 열었지만 오히려 세상은 냉소적이다. 한 마디로 ‘너나 잘해라’하는 식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식의 냉소적 반응까지 나왔다. 기독교를 ‘개독교’로 비아냥거리는 것에서 기인한 것 같다. 지난 시절 그나마 한국교회를 버티게 했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원로들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특히 원로들의 경우 자기반성과 철저한 회개도 뒤따라 주었기 때문에 그들의 ‘쓴소리’ 역시 큰 울림으로 다가 올 수 있었다. 이들은 한민족의 굴곡 된 질곡을 모두 겪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일제시대의 신사참배, 해방정국, 6.25 사변 후 성도들을 버리고 월남, 대한민국의 정착기와 성장기를 모두 거친 백전노장들로써 이들의 철저한 회개와 통곡기도는 한국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한국교회는 성장했고 눈물 어린 기도의 결과물들은 곧바로 후배 목회자들에게 까지 전달되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때의 그 눈물이나 진심어린 회개가 사라진 지금 한국교회는 원로가 보이지 않는다. 원로들이 있다고 해도 여러 가지 송사나 추문, 비리에 연류된 까닭에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들이 어떻게 단 한번의 ‘회초리 기도회’를 통해 한국교회를 향해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 할 수 있겠는가? 보수쪽 원로들은 여러 가지 비리나 개인의 문제로 신망을 잃은지 오래고 진보쪽 원로들은 ‘투사’에 가까워 이미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목회자가 맞느냐는 여론에 직면해 있으며 종북쪽 원로들은 여전히 1980년대의 시대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계의 언론들 역시 신구교체가 이뤄졌지만 지금의 교계기자들은 갱신과 회개만 부르짖을 뿐 한국교회의 빛나는 업적들이나 성과물, 역사는 모조리 부인하는 형국이니 교회가 더 이상 세상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세상이 오히려 교회를 염려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원로가 절실해 지기 까지 한다. 그들의 눈물어린 ‘쓴소리’를 듣고 싶은 건 교회만이 아니다. 세상도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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