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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2014년 05월 18일 (일) 23:04:44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최근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적인 애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불순세력들에 대한 우려와 대국민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주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매체들을 좌파들이 점령하다시피 하다 보니 유가족도 자기들의 주장과 궤를 달리하면 ‘정부 프락치’로 낙인 찍는 경우까지 나타났다. 한 마디로 마녀사냥의 광풍이 한국 사회를 강타하는 듯 하다. 그런데 이 와중에서 일부 교계의 신학생들의 행동이 교계의 추모분위기와 달라 주목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세종대왕상을 기습 점거한 감신대생들과 하얀색 마스크를 쓰고 역시 광화문 일대를 계속 돌고 있는 한신대생들이 그들이다. 이들이 과연 적절한 시위를 했는가는 상식에 맡겨도 좋을 듯 하다. 그러나 지금 세월호 참사로 국론이 분열된 마당에 이를 ‘운동권적 사고’와 ‘이분법적 논리’로 정치적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는 옳지 못하다고 본다. 지난 1970년대와 80년대 학원가에서 민주화 열기가 고조됐을 때 감신대와 한심대는 가장 극렬하게 싸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한신대의 경우는 지금 자유주의 신학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의 발원지이고 ‘주사파’ 운동권의 메카였다. 문익환, 문동환, 안병무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학자들이 대거 배출되었고 본래 교계에 자유주의 신학을 처음으로 뿌리 내린 장공 김재준 목사를 그 원조로 두고 있는 까닭에 한 대 신학과가 폐쇄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감신대의 도시빈민선교회 역시 ‘운동권’ 계열의 동아리로써 유명세를 탔으며 지난 80년대에는 그 유명한 노선 싸움 및 대자보 논쟁의 핵심에 서기도 한 곳이다. 감신대의 경우 ‘주사파’가 대세인 한신대와 달리 ‘주사파’운동권과 ‘민중민주’계열의 학생들이 서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대자보 논쟁을 극렬하게 벌였던 곳이며 이러한 불신과 반목이 결국 오늘날 사분오열의 감리교를 낳았다는 설도 있을 정도였다. 이들 두 대학은 캠퍼스 내에서 술병들이 난무했고 ‘성직자 의 길’을 걸으려는 보수적인 신학생들이 그들과 연대하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정착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도 한 때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념 편향성은 이후 한국교회의 흐름과 너무나 동떨어진 까닭에 세력이 약화되었었고 특히 감신대의 경우는 변선환 학장 사태로부터 기인하여 종교다원주의 논란에 휘말린 바 있고 한신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육적부활’을 부인하는 까닭에 무신론자 양성소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물론 그들에게도 변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감신대의 경우 특정교회의 세력들에 의해 교단이 좌지우지 되는 걸 막을 수 있었지만 계파간(감신대, 계명대, 목원대, 협성대)싸움이 치열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분열을 초래할 수 밖에 없었다. 한신대의 경우 70년대와 80년대에는 교단 내 장로들과 기업인들에 대한 세무사찰도 겪는 ‘외풍’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신학생들이 아직도 ‘선지동산’이라는 신학대학에서 성직자를 꿈꾸면서도 70-80년대 방식의 ‘투사’로써 그것도 근거가 불분명한 명분 없는 시위는 공감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시대가 변해가는 데도 주사파 프레임과 운동권적 사고로 국민의 정서와 동 떨어진 시위는 결코 한국교회의 성도들로부터 공감을 얻어내기 힘들 것이다. 더군다나 교회는 어떻게든 사회의 분열을 막고 화해와 일치를 추구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이 있다. 그런데 세월호의 참사 앞에서 ‘분노팔이’ 소리를 듣고 있다면 그건 분명히 잘못된 일임에 분명하다. 80년대 민주화 열기 당시 이들 신학생들이 처음 공감을 얻었던 것은 그들이 옳다 아니다에 대한 분명한 나침반 역할을 했었고 농촌 계몽운동과 도시 빈민들에 대한 여러 가지 공감을 이끌어 냈기에 가능했다. 당시 한국교회는 너무나도 시국에 대한 역사인식이 부족했었다는 평가를 받았었고 이에 대한 반사적 반응이 신학생들의 시국선언과 사회참여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오늘날 당시 아스팔트에서 민주화 열기를 분출해 내던 대다수의 신학생들은 지금 한국교회의 중견목회자로 성장했다. 이들은 그때의 초심들을 잃지 않으며 교계의 정화운동과 목회자들의 고질적 병폐들을 고쳐나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이 지금 공감을 받고 있는 건 영성과 연륜, 그리고 중용이다. 지난 70년대와 80년대 터득한 모든 시국에 대한 정세판단과 대응들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터득하고 어떠한 사안을 놓고도 교회가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분명히 인지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 경험했던 주사파 운동권들의 모순을 너무나도 알고 소련 등 공산권 붕괴를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친 행동도 하지 않으며 운동권서적을 읽고 학습도 받아 본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현상과 본질에 대해서도 잘 꿰뚫어 보는 안목도 갖췄다. 당시 신학생들은 시위를 하거나 구치소에 갇히면서도 논문이나 리포트를 빼먹지 않았고 밤새 술 먹으며 농성장에 있다가도 새벽예배를 드릴 줄 알았다. 무엇보다도 거짓말을 싫어하고 주일성수는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그런 멋진 면모도 있었다. 하여 교회와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두 가지를 병행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병행을 한건 하나님에 대한 소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신학생들은 소명의식을 많이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생도 모르고 자라 어려운 사역은 꺼려하고 반드시 목회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다고 한다. 또 전교조 교육 등으로 한국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만 이식되어 기존의 교회와 목회자들을 단순히 부패세력으로만 여긴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교회에서는 쓸 만한 신학생은 없고 신학생들은 갈 교회가 없다고 개탄한다고 한다. 한국교회의 미래는 신학생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돌출행동은 섯부른감이 많다. 이들은 옳다고 여기겠지만 교계가 공감하지 못하는 행동은 결국 공멸을 부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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