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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기간 만이라도
2014년 03월 04일 (화) 20:41:06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올해도 어김 없이 사순절 기간이 돌아왔다. 아마도 정통 그리스도의 교회라면 이 기간은 부활절의 씨앗이 된다는 점만큼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교회력의 시작은 부활절이다. 그러나 이 부활절은 반드시 사순절을 거쳐 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순절은 부활절을 잉태하는 소중한 기간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태중에 두고 경건한 마음으로 탄생을 기다리듯 사순절 기간 역시 이러한 의미를 지니는 셈이다.

사순절 전통은 매우 오래 되었다. 3세기 초까지는 기한을 정하지 않고 2, 3일만 지켰었는데, 기간을 정한 것은 니케아공의회(325) 때부터라고 한다. 40이라는 숫자는 모세와 엘리야, 특히 예수의 광야에서의 단식(斷食) 일수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정작 사순절의 기간은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서로 달랐다. 동방교회는 600년경부터 7주간으로 했는데, 토요일과 주일을 제외하고 부활주일(復活主日)만 포함하여 36일을 지켰고, 서방 교회는 6주간으로 하여, 주일을 제외하고 36일을 지켰다. 예루살렘 교회만 4세기 때처럼 40일을 지켰는데, 8주 중 5일만 단식을 하였다. 그러던 것이 그레고리우스 대교황 때부터 40일을 지키게 되어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초기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이 재기를 매우 엄격하게 지켰는데, 하루에 한 끼, 저녁만 먹되 채소와 생선과 달걀만 허용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금식은 완화되었고, 사순절을 금식기간으로 지키기보다는 구제와 경건훈련으로 더 유효하게 지키게 되었다.

반드시 지켜 온 세 가지 원칙이 아래와 같았다. 사순절 기간이 고난주간의 연장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을 기억하는 거룩한 절기임을 상기했기 때문에 생긴 전통이다. 첫째, 성회 수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재를 이마에 발랐다. 둘째 금식을 했다. 물론 초창기에는 저녁은 허용되었지만 음식은 몇 가지로 제한되기도 했다. 셋째 신자들이 구제와 선행에 힘썼다. 사순절 영성은 이러한 십자가 신앙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요즘 한국교회는 어느 때 부터인가 사순절에 있어서 성도는 그 원칙을 지켜도 목회자들은 지키지 않는 모순된 기간으로 변질되었다. 다시 말하면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심지어 미디어 금식까지 강요하고 여러 집회를 열어 그 기간을 경건하게 보내라고 하면서 정작 목회자들은 부활절 연합예배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으로는 회개만 촉구하고 죄의식과 죄책감만 심어주기에 급급하기도 한다. 그 의미보다는 통곡하면서 예수님과 같은 극한의 고통을 느끼라고 말하고 심지어 미디어금식이라 하여 신문과 방송, 영화 및 일체의 오락을 금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평신도들에게만 해당되고 정작 목회자들은 면죄부라도 받은 듯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옳으냐 하는 것이다. 목회자들이 먼저 솔선수범하고 기관들이 사회에 대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성직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망각하고 성도들에게만 강요하는 듯한 모습은 가뜩이나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3.1운동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민족대표 33인이 등장하는데 그 중 가장 주목받은 분은 감리교의 전덕기 목사님이셨다. 이분의 삶이 너무나도 보기에 정의롭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또한 스스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준 까닭에 그 의미가 더욱 빛이 났다. 그런데 목회자들이 빠진 사순절 영성이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또한 고난주간은 단순히 특별새벽기도나 하는 그런 주간이 아니다. 또한 고난 속에는 목적이 있다. 무작정 고생하는 것이 고난의 목적이 아니다. 고난주간이 되면 특별 새벽기도를 통해 집중회개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힘든 인생살이와 고난만 묵상하며 슬퍼해서는 안된다. 고난에 집중하지 말고 고난을 통해 이루신 것을 주목해야 한다. 고난만 묵상하며 회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담긴 의미와 목적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 기관들이 연합이 안 되더라도 개별적으로라도 여러 가지 캠페인을 벌여 나갔으면 좋겠다. 특별히 목회자들부터 이러한 회개와 절제, 구제 등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예수님의 고난으로 부활을 경험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달라야 할 것이다. 목회자들이 스스로 금식 등으로 자발적으로 고난에 참여하거나 기부와 봉사 등으로 이웃의 고통을 나눠야 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목회자들부터 사순절 기간 동안 경건생활과 구제에 힘썼으면 한다. 이에 대한 모범이 어느 교회는 사순절 기간 동안 날을 정해 헌혈하고 금식하며 아낀 돈으로 불우한 이웃의 수도요금을 대납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처럼 교회도 이웃과 물과 피를 나누자는 의미에서 작년부터 이 운동을 실시했다지역 내 소외이웃의 고통을 더는 데 작게나마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먼저 실천하고 틀에 박힌,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식의 사고에서 탈피한 결과다.

고난과 부활은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이를 단순히 교회 절기로 이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외부의 박해가 없어진 최근 한국교회에서 고난과 부활을 체감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 목회자들부터 현대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알아야 할 고난과 부활의 참된 의미에 대해 먼저 깨달아야 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이번 사순절만큼은 목회자로 인한 불미스러운 일도 없고 오히려 미담만 전해지는 거룩하고 복된 기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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