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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논란 가운데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를 재평가 하자!
이승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해양주권’ 없었음을 상기해야
2013년 07월 24일 (수) 01:13:59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조국광복의 일념으로 3·1정신을 계승하고, 통일대한민국의 기초를 공고히 했던 '건국의 아버지'"

 최근 들어 좌파진영이 이승만 죽이기박정희 죽이기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NLL 논란과 친노세력의 재등장, 박원순과 안철수의 대권 야욕, 북한 김정은의 재도발 기도 등 지난 대선 이후 그 세력이 축소된 종북세력들이 최후의 저항을 하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무기력하게 애국보수세력이 당해야만 했던 MB정권 초기와는 달리 어느 정도 국민의식과 애국 보수세력의 체력도 강화됐다는 평가다. 이미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저들의 선전 선동은 진실이 드러났고 먹혀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좌파매체를 총동원하여 건국대통령과 대한민국 산업화의 영웅 죽이기에 나선 것은 그만큼 저들이 다급해졌다는 증거다. 이런 가운데 4.19 당시 이승만 하야를 외쳤던 4.19세대와 6.29로 대표되는 민주화 세대가, 이 같은 움직임에 분노를 표하며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역설하기도 하고 오히려 그 실체를 밝히고 있어 앞으로 역사바로세우기는 가속화 될 전망이다. 더불어 지난 좌파정권 10년간 왜곡됐던 한국사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열린 우남 이승만 박사의 48주기 추모식은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되었다. 

우남 이승만의 위상 재정립 시급

건국 대통령으로 대한민국의 기초를 공고히 다진 우남 이승만 박사 48주기 추모식19일 오전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회장 이기수)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추모식은 정부주요인사, 기념사업회원, 유족 및 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고인을 위한 묵념 및 조총발사, 추모기도, 추모사, 추모의 노래, 분향 및 유족인사 등으로 진행됐다.

최완근 국가보훈처 차장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을 대신한 추모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일찍이 민족교육과 국제외교를 통해 국가의 힘을 기르고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탁월한 혜안과 선구적인 사상으로 우리민족을 이끌어 왔다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대한민국의 태동기를 이끌었던 것은 폐허 속에서 오늘날의 경제적 풍요와 자유민주주의 성숙을 일구어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고 이 대통령의 위업을 평가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6·25전쟁 이라는 국가위기를 맞이했을 때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던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한 UN의 파병을 독려하여 전 세계 국가로부터 지원과 지지를 이끌어 냈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등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과의 혈맹관계를 정립하여 오늘날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 주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후손들이 애국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본받아 대한민국이 이제 세계의 중심국가로 도약하여 국제사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이 대통령의 영원한 안식과 명복을 기원했다.

이기수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회장은 독립정신과 조국광복의 일념으로 일평생 3·1정신을 계승하고, 우리가 그토록 희구하는 통일대한민국의 기초를 공고히 했던 건국의 아버지였다미래를 내다본 우남 이승만의 용기와 결단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신기루와 환상도 아닌 실체이자 현실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현실 상황은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 차 있다한편에서는 존경과 추모의 열기가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사실 왜곡을 뛰어 넘어 일방적 매도와 원색적 비난까지 서슴치 않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호국헌신의 화신으로 추앙받는 건국대통령-안보대통령-교육대통령으로서 위상이 재정립될 것을 기원했다.

대한민국 역사 찾기 운동

지난 2011년 설립된 이승만 연구소의 인보길 공동대표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인터넷신문 뉴데일리와의 당시 인터뷰에서 북한과 종북 세력은 대한민국을 공격하려 이승만=독재자란 아이콘을 만들어 악용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주장은 최근에 종북세력들이 만든 다큐멘터리인 백년전쟁의 왜곡에 대한 강력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인 대표는 이승만 박사를 해방 공간에서 일찌감치 독재자로 규정한 건 스탈린과 김일성을 추종하는 공산당 세력이었다이 박사가 소련의 한반도 적화 시나리오를 간파하고 그것을 끝까지 저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좌파 세력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해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에게 친미·친일·독재자 이미지들을 덧칠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인구의 90%, 아니 4·19 세대조차 건국 당시 한반도 정세와 현대사의 진실을 잘 모른다연구소 설립은 대한민국의 역사 찾기 운동을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990년대 이후 문민정부,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만든 역사교과서가 청소년에게 가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대한민국 체제 파괴를 선동하는 의식화 교재나 마찬가지다. 그것을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승만이 1904년 옥중에서 러일전쟁의 발발 소식을 듣고 썼다는 독립정신도 읽었다. 몇 날 며칠을 울었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이승만을 악마처럼 저주하지 않는다면 그 책들을 읽으면서 울지 않을 대한민국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이승만은 이 책에서 독립정신 실천 6대 강령을 주장했다. 개방·교육·자유 등을 강조하며 자유독립 국가의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이승만은 평생을 자기가 그 책에 쓴 대로 살았다고 했다.

이승만의 가장 큰 업적으로는 ““좌우합작을 안 했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만들고 시장경제 기반을 닦았다” “·미동맹을 체결하고 70만 대군을 육성했다” “농지개혁, 교육 확대등을 들었다. 이와 함께 박정희 시대 일꾼들은 이승만 박사가 키워놓은 인재들이라며, 따라서 “60~70년대 고도성장이 그 덕에 가능했다고 피력했다. 그는 이승만의 일생은 어마어마한 컨텐츠의 보물창고다. 파란만장한 파노라마이자 소설이고 영화라며 훌륭한 작가가 있다면 수십 권의 대하소설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건국의 아버지들을 적의 손에 넘겨준 채 방치하는 나라가 경제대국 운운하는 건 웃기는 얘기라고도 했다. 또한 청소년에게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해나갈 것이라고 천명한 그는, “지금처럼 왜곡된 역사를 계속 교육하는 건 이승만 죽이기이자 대한민국 죽이기’”라고 분개했다.

평화선 선포와 NLL 논란

최근 NLL 논란이 이어지면서 과거 좌파정부였던 김대중 정권은 독도포기를 내포한 한일어업협정 체결을 그리고 노무현 정권은 아예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하면서 NLL을 무력화시키며 심지어 포기하려 했다는 사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평화선 선포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승만 라인이라고 불리는 이 평화선1952118일 발표한 대한민국 국무원 고시 제14인접 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에 의거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주장에 따라 선포했다 하여 이승만라인또는 이라인(Lee Line)’, '평화선' 이라고도 한다. 이 평화선은 해안에서부터 평균 60마일에 달하며, 이 수역에 포함된 광물과 수산자원을 보존하기 위하여 설정한 것으로, 일본을 비롯한 우방들의 반대가 있었다.

평화선 선포의 배경을 보면, 한일간의 어업상의 격차가 심하였고 어업자원 및 대륙붕 자원의 보호가 시급하였으며 세계 각국 영해의 확장 및 주권적 전관화 추세가 일고 있음에 대처하였고 맥아더라인의 철폐에 따라 보완책의 하나로 설정한 것이다. 평화선의 선포를 위한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에 관한 선언은 그 심도 여하를 불문하고 인접해붕에 대한 국가의 주권을 보존하며 행사한다는 주권선언의 성격이었다. 한편, 평화선이 선포된 지 8개월 후인 19529월 당시 국제연합군 사령관 M.W.클라크는 북한의 잠입을 막고, 전시(戰時) 밀수출입품의 해상침투를 봉쇄할 목적으로 한반도 주변에 해상방위수역을 설정했다. ‘클라크라인으로 불린 이 수역이 평화선과 거의 비슷한 수역이었으므로, 평화선 선포를 간접적으로 지원한 결과가 되었다. 나라를 잃은 뼈저린 과거를 기억하는 건국대통령으로써 가장 먼저 한 일이 국가의 주권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만약 이승만 대통령의 이 같은 주권회복선언과 용기 있는 행동이 없었다면 지금도 대한민국은 영토분쟁을 겪고 있을 터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친일파였다면 독도 영유권을 분명히 한 평화선을 선포했을리도 없다. 이승만의 반일노선은 일관됐고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다. 대한민국 정부 출범 나흘째인 1948818일 그는 처음으로 한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일본에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라고 천명했다. 미군정 치하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내각이 반발하자 99일 대마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194918일 연두회견에서는 대일(對日) 배상문제는 임진왜란 시부터 기산(起算)해야 한다” “대마도는 별개로 취급돼야 할 것이다라고 밀어붙였다. 이승만은 6·25전쟁에서 한국을 도와준 미국이 그렇게 권해도 일본과 수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종북세력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라고 매도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NLL 논란으로 종북세력들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고 있는 요즘 왜곡됐던 건국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 역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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