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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실과 신화
2013년 05월 28일 (화) 20:41:50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가정의 달’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지난 5월 한달 동안 ‘광주사태’에 대한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급기야 지난달 24일 오전7시30분 광주광역시청 3층 중회의실에서 강운태 광주시장과 국회의원, 지역원로, 5.18단체, 시민사회단체, 법조계, 학계, 언론계, 종교계 등 각계 대표 32명이 참여한 가운데 5.18역사왜곡대책 제1차 시국회의가 열렸다.
제1차 시국회의는 최근 인터넷 사이트와 일부 종합편성채널에서 5.18역사 왜곡, 폄하 사례가 5.18민주화운동 자체를 부정하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판단 하에 이에 대해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대처해야 된다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5.18공식기념곡 지정 추진위원회 ▲5.18역사 왜곡시정 대책위원회 ▲5.18정신 계승, 선양위원회설치 등을 골자로 한 토론을 벌였다. 또 5.18역사 왜곡시정 대책위원회는 광주지방변호사회, 민주화를 위한변호사모임의 추천 변호사와 광주시 고문변호사 등을 중심으로 법률대응위원회를 구성하고, 인터넷 사이트상 5.18 왜곡, 폄하 사례에 대한 철저한 법률적 검토를 거쳐 민, 형사상 사법대응 수위와 대상을 결정하는 등 5.18역사와 가치에 대한 왜곡, 폄하 사례가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대처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강력 대응은 또다시 ‘마녀사냥’이라는 악순환을 가져오고 있다. 지난번 어나니머스에서 북한 ‘우리민족끼리’ 사이트를 해킹한 이후 간첩신고 행렬이 벌어졌던 것 처럼 이번에는 무조건 5.18을 왜곡했다면서 무차별적인 마녀사냥으로 네티즌들을 신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5.18 광주사태의 경우 거의 모든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광주시민’들이다. 그들은 그동안 타 지역의 의견이나 심지어 대한민국 육군 보안사,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의 보고서까지도 믿지 않는 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오로지 자신들의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과 증언, 심지어 북한에서 단편적으로 만들어진 여러 자료들과 영상물들에 의존하는 한편 광주사태에 대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규정을 하는 동안에도 ‘신화창조’를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5.18은 대한민국 근 현대사의 아픈 비극의 역사다. 또한 한동안 진실이 가려졌다는 평가를 받았고 제6공화국 당시 국회청문회 등을 통해 하나 둘씩 그때의 상황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된 데에는 보도지침이나 검열, 혹은 제5공화국이라는 역사의 암울한 시기를 들 수도 있겠으나 상당 부분은 광주시민들이 자처한 측면이 없잖아 있다.
1987년 6월 국민대항쟁 당시 민주화의 열망 속에 대학가에서는 ‘5.18’관련 비디오를 보며 토론하는 것이 보편화 되었지만 그 신뢰성에 있어서 매우 부족한 내용들이 많았다. 여러 나라 방송에 소개된 영상들을 짜깁기 한 형식으로 편집된 비디오의 내용은 그날을 경험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오로지 계엄군들이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기 위해 진압하러 오는 식 외에는 다른 내용은 없었다. 게다가 그 후반부 20분가량은 ‘인동초 김대중 선생’같은 특정 정치인 홍보에 더 열심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광범위하게 ‘광주순례’를 가던 시절이었는데 광주에서 만난 시민들의 증언은 각각 달랐다. 금남로에서 대중집회가 열릴 때도 증언을 하러 올라오는 연사들은 거의 대부분 이구동성으로 ‘수천의 희생자’를 언급했고 광주 시내가 붉은 피로 아스팔트가 물이 들 정도였으며 계엄군들에 의해서 수많은 시체들이 사라졌고 묘들이 이장됐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망월동묘지의 묘들은 이장을 거부한 소수의 ‘열사’들만 묻혀있다고 말했다. 어떤 어머니는 증언하기를 ‘목 잘린 시체’가 분뇨차에 실려 가는 걸 시민들이 막아 세우고 수습했는데 배꼽 밑의 점을 보고 아들인줄 알았다면서 시신유기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고 증언했다. 심지어 시민들 사이에서 듣다 보면 임산부의 배를 계엄군이 갈랐다던지, 유방만 도려내어 탱크에 매달고 다녔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물론 시민들이 일사분란하게 광주의 안정을 되찾으면서 헌혈을 했다든지 하는 미담도 있었지만 일부 시민들의 ‘무용담’은 광주의 그날들을 직접 목격하지 못한 타지인들에게는 충격이었음에 분명하다. 또한 광주의 유족단체들도 너무 많았다. 오죽하면 1990년대 후반에 광주와 관련된 영화를 만들려고 영화제작자들이 움직였을 때 하도 유족 및 시민단체가 많아 어느 쪽과 먼저 얘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게다가 이들 사이에서는 보상금 등을 놓고 서로가 ‘전공’을 부풀리려 하고 누구는 그저 소극적으로 움직였는데 어쩌다보니 자기가 민주화 투쟁을 도맡아 했다는 식의 마타도어도 난무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 광주문제가 또다시 언급되는 것은 인터넷 시대에 걸맞게 제한된 정보가 아닌 수많은 자료들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정사’와 ‘야사’가 혼재하여 돌아다니고 있어 어떤 이들에 따라서는 ‘속았다는’생각까지 들 정도다. 광주에 대한 ‘왜곡’도 문제지만 무조건적으로 ‘신화’로 포장한 글들도 동시에 돌아다닌다. 광주에 대한 역사적 진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광주시민들과 좌파역사가들이 만든 ‘신화’도 이참에 함께 가려내야 하지 않을까한다. 광주에 관한 글들을 단순히 포털에서 검색해 보면 대한민국의 ‘정사’도 부정되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글들 중에는 오히려 반박을 하기 위해서 라기 보다는 일종의 혐오감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편집한 글들도 많이 나온다. 광주교도소를 습격한 엄연한 사실 조차도 그 숫자나 의도가 다 다르게 등장한다. 이러한 ‘신화창조’가 오히려 광주의 진실을 가려내기 보다는 더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역사적 사실보다는 ‘지역감정’이 더 우선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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