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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설계를 한 장군
임 종 린( 시인, 전 해병대사령관)
2013년 03월 24일 (일) 22:41:08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이라크전쟁의 영웅 ‘토미 프랭크스’ 장군의 “아름다운 인생설계”가 몇 년 전 미국에서 감동적 화제로 떠오르고 있었다. 혁혁한 전공을 세웠음에도 겸손을 잃지 않고 군인으로서 최고영예인 육군참모총장직 제의도 거절하는 용기를 보여 미국의 진정한 군인으로 평가 받고 있었다.

미국의 ‘포린 페이스지’는 이라크전쟁을 속전으로 끝낸 그의 인물 평가를 “군사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의 하나”라면서 그를 선배 ‘노먼 슈위츠코프’ 보다 훨씬 대담하고 훌륭한 장군이라고 치켜세웠다.

“토미 프랭크스 장군, 독자적 폭파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전역하다”는 유머러스한 제목을 단 기사였다. 그러나 장본인은 이 기사를 읽어 본 일조차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는 육군참모총장직제의를 거절하고 38년간의 군 생활을 마감한 후 군문을 떠날 것을 결심하였다.

그의 육군참모총장직 제의거절 이유는 간단하였다. 아내 ‘캐시’와 함께 한동안 손자들을 무릎에 올려놓고 같이 놀아보는 것 이였다. 그리고 가능하면 책을 쓸 것을 고려중이며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상담역을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 당시 대통령 ‘부시’는 “나는 진정으로 ‘토미’ 장군을 신뢰한다”라고 했으며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훌륭한 군인”이라고 평가했고 ‘뉴트 깅그리치’ 국방부자문위원은 “그는 아이젠하워와 많이 닮았다”고 평했다. 이런 평가에 대해 ‘토미 프랭크스’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사실 내 스타일이 아니다” 라고 겸손의 태도를 보였다.

대학을 중퇴하고 이등병부터 4성 장군으로 유럽중부군사령관이 되기까지 입지전적(立志傳的)인물인 ‘토미 프랭크스’ 는 베트남전 참전 당시 야간전투 중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병원신세를 진적도 있었다. 1968년 2월11일 베트콩 총 공세 때 ‘토미 프랭크스’ 중위는 빗발치는 적의 총탄 앞에서도 적극적이고 용감한 행동을 보여 동성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주문을 잊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는 쓰지도 말아 주십시오. 나를 선전하는데 관심이 없습니다”‘토미 프랭크스’는 1945년6월17일 오클라호마 주 와인우드 마을에서 가난한 집의 여덟 번째로 태어났으며 출생한 병원에서 곧바로 입양된 파란만장한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이상과 같은 기사를 읽으며 36년간 푸른 제복을 입고 반평생을 보낸 비슷한 군 생활을 마친 사람으로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보기 드문 사실을 발견했다. 흔히들 군인은 정이 없고 무뚝뚝하며 사랑이 메말라 있는 계층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가장 정과 사랑을 많이 품고 있는 계층이 직업군인이라는 사실을 소개하고 싶고 ‘토미 프랭크스’가 평범한 군인과 다른 점은 군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육군참모총장직제의를 거절한 사실이다.

기사에 나타난 육군참모총장직 제의에 거절한 이유는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그에게는 직위의 한계를 느끼고 물러날 때를 알며 그 한계가 왔을 때 그 시기를 잃지 않으려는 영리한 지혜가 숨어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높은 직위의 한계를 느끼지 못하는 습성이 도사리고 있기에 평범한 사람들은 ‘토미 프랭크스’와 같이 물러설 시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더 높은 직위에 올라 더 많은 시간을 높은 직위에서 누리고 싶어 하다가 그 직위를 갖지 않는 것보다 못하는 시점을 맞게 되는 것을 우리는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또한 직업군인의 생활은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한 가정의 가장 역할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이 많이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고 우리현실과는 너무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역사 속에서도 이와 비슷한 명인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이해도에는 차이점을 느낄 수가 있다. 삼국시대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이 전투에서 패하고 돌아온 신라‘김유신장군’ 아들‘원술랑’ 은 어머니가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며 화랑도의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다시 싸움터에 나가게 하였다.

‘원술’ 은 백의종군하여 전투현장의 진두에 서서 모범을 보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나 한 팔을 잃었다. ‘문무왕’ 은 ‘원술’ 에게 부마(사위)의 전공을 하사했으나 사양하고 평민의 딸 진달래와 결혼하여 시골로 내려가 새벽하늘의 별처럼 의좋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토미 프랭크스’ 와 ‘원술랑’ 은 모범을 보여 존경심을 갖게 한다.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육군참모총장직 제의를 거절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토미 프랭크스’ 장군의 앞날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 하느님은 때때로 이 세상에 훌륭한 사람이 태어나게 해 아름다운 인생설계의 표본을 보여주게 성령의 은혜를 내려 주시기도 한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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