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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여 일어나라!
2013년 01월 29일 (화) 22:55:52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한국에서 감리교회 신앙은 1884년 맥클레이 선교사가 내한하여 고종황제의 윤허를 받아 의료선교와 교육사업을 시작했고, 1930년 조선감리교회가 자치교회를 설립하면서 발표한 기독교 조선감리회의 교리적 선언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1997년 새롭게 신앙고백을 하고, 이 사회에 대한 봉사와 책임의지를 발표한 사회신경 역시 현대적 의의를 담아 발표했다.

1887년 7월 24일 배재학당 학생 박중상이 첫 감리교 세례교인이 되었고, 1887년 10월 9일 서울에서 오늘의 정동제일교회의 모체인 ‘벧엘예배당’이 설립되었다. 1897년 서울과 인천, 평양에서 엡웟청년회가 창설되었는데 이는 오늘의 감리교 청년회와 청장년선교회 및 남·여 선교회의 모체다.

선교 초기부터 신학반과 신학회를 조직하고 한국인 목회자 양성을 추진하여 1901년 최초 한국인 목사로 김창식 목사, 김기범 목사를 배출했다. 미감리회에서는 1902년 하와이 이민 선교를 시작으로 북만주와 몽고, 일본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한 것도 파격이었다.

남감리회 선교의 시작은 개화파 지도자 윤치호가 망명중인 1887년 4월 중국 상해에서 세례 받고 한국 최초의 남감리교인이 되면서 부터다. 그는 미국에 유학할 때부터 남감리회 국외선교부에 한국 선교를 촉구했다. 이에 1895년 10월 18일 중국에 있던 헨드릭스(E. R. Hendrix) 감독과 리드(C. F. Reid) 선교사가 내한하였고 이듬해 8월 리드 부부가 서울에 정착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남감리회에서도 배화여학교, 한영서원, 호수돈여학교, 구세병원 등 학교와 병원을 설립했고, 태화여자관을 비롯하여 개성, 원산, 춘천 등지에 여자사회관을 설립하여 한국 근대 사회복지사업의 문을 열었다. 남감리회는 선교 초기부터 신학교육에 있어서 미감리회와 협력했고, 1907년에 두 교회 연합으로 협성신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감리교회는 한민족의 미래를 위한 교육사업과 출판 등 지식문화를 넓히는데 막대한 지원을 했다. 감리교신학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 배재, 이화 학당의 기초를 세웠으며, 목원대학교와 계명대학교, 협성대학교 등 지방의 명문 사학을 만들어 냈다. 출판문화를 통해 사회 이념을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등 일반 및 사회 교육의 지도적 원천이 되기도 했다.

감리교회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환자, 장애우를 위한 끊임없는 사회봉사 및 사회 정의를 위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선교 초기부터 여성의 지위에 대한 관심과 병원의 설립, 사회봉사 단체를 형성함으로써 복지활동에 힘쓰는 등 사회적 책임을 위해 노력해 왔다.

감리교회의 이 같은 노력은 장로교의 극심한 분열과 교파주의, 권위주의와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요즘의 감리교는 이러한 과거의 공을 모두 무너뜨리는 안타까운 행보에 가깝다. 감독회장 선거의 공전이 오래되면서 교회개혁의 걸림돌이 됐다. 지난해 감리교가 한 업적은 지난 2008년 감독회장 선출문제로 파행을 거듭한 지 4년 만에 총회 행정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경기도 성남 선한목자교회에서 열린 기독교대한감리회 제29회 총회는 재적 대의원 1,322명 가운데 84.8%인 1,119명이 참석해 감리교단 정상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기도 했다. 총회 후 실행부위원회가 열려 감리교 은급기금 손실 문제와 기독교타임즈 임금체불, 동대문교회 처리 등 교단 현안들을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총회 후 입법의회 개최 여부를 놓고는 계파간 이해가 얽히면서 설전이 이어지면서 감리교의 현실을 드러내기도 했다.

선거법 등 장정을 재정비한 뒤 감독회장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입장과 현실적으로 선거부터 실시해 감독회장을 뽑아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 정상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출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감리교단을 정상화시키고 감독회장 선출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임시입법의회를 열고 교회세습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감리교교회법 개정안을 통화시키기도 했다. 교회세습 논쟁에서 감리교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조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교회가 크게 자랄 수 있도록 밑거름을 준 순교자적 삶을 살다간 성직자들의 희생에 의해 오늘날까지 교회가 크게 자라올 수 있었다. 감리교가 가장 공헌한 부분이 선교와 순교자적 삶이었다. 그러한 감리교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충격적이기도 하고 한국교회의 자부심을 상실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 가운데 선거관리위원회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총회특별재판위원회의 판결무효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김기택 임시감독회장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선관위를 향해 특별재판위의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김 임시감독회장은 또(선관위가) 법정에서 이기더라도 총회 차원의 행정지원은 없을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감리교 수장이 교단법을 무시한 선관위에 철퇴를 날린 것이다.

예산이 지원되지 않을 경우 선관위가 추진하는 선거 일정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정된 정책발표회 개최 여부도 불투명하다. 교단 정상화를 위해 5년 만에 추진한 감독회장 선거가 또다시 내부 갈등과 법정소송에 휘말리면서 내홍이 심화되고 있다. 김기택 임시감독회장이 이번 사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어떤 비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쪼록 원만한 해결을 하기를 기도해 본다. 감리교의 파행은 한국교회의 손실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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