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계의 길자연 목사와 홍재철 목사의 편법세습과 한기총의 파행, 교계의 분열, 그리고 교회의 세속화를 지켜보면서 종교개혁 495주년에 문득 ‘국채보상운동’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 온 이후 ‘국채보상운동’ 만큼 예수님의 정신을 온 사회에 두루 퍼지게 만든 운동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철저한 헌신을 통한 국권회복운동이면서 개신교가 사회변혁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대구 광문사에서 개최된 ‘대동광문회특별회’에서 서상돈이 의연금을 모아 국채 1천3백만환을 일본에 상환하자고 제의하고 애국계몽운동단체들과 전 국민이 적극 동참함으로 전개된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민족운동이다.

이 운동의 핵심은 “2천만 동포가 금연ㆍ금주해 국채를 갚자!”였다.

서상돈 선생은 1907년 2월 16일 대구 광문사에서 그 명칭을 대동광문회로 개칭하기 위한 특별회를 마친 뒤 광문사 부사장으로서 담배를 끊어 당시의 국채 1,300만환을 보상할 것을 제의했다. 이후 국채보상운동에 개신교계가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더욱 활성화 되었고 전 세계 유래 없는 보수적인 풍토조성을 통해 고질적 병폐였던 음주와 절대다수의 흡연, 도박, 첩 문화 등을 쇄신하는데 앞장 설 수 있었던 것이다.

1904년의 고문정치 이래 일제는 한국의 경제를 파탄에 빠뜨려 일본에 예속시키기 위한 계략으로 한국정부로 하여금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강제로 도입하게 했다. 차관의 목적은 한국의 각종 이권을 독점적으로 확보하고 내정간섭 기회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생긴 국채가 당시 돈으로 1천3백만환, 당시 적자 재정 상태의 한국 정부는 고율의 이자도 갚기 어려웠다. 이에 1907년 1월 29일 서상돈을 위시한 애국지사들은 “눈더미 처럼 불어나는 국채로 인해 전국토를 일본에 뺏기고 2천만 국민이 그들의 노예가 될지 모른다”며 국채보상운동을 제안했다.

같은 해 2월 16일자 ‘제국신문’에 국채보상운동의 취지문이 실리자 서울시민과 국민들은 절박한 국운에 충격을 받고 이 운동에 적극 동참했다. 나라의 위기 앞에는 사농공상이 따로 없었다. 백성으로서 어떠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그 목숨조차 가치 없던 노비와 백정도 나라를 살리고자 그들의 작은 품삯을 내놓았다. 여성들도 나라를 살리자며 나섰다. 가락지, 은장도 같은 패물을 내놓고 심지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후원금을 만들기도 했다. 노인들은 물론 심지어 철없는 아이들도 어른들로부터 받은 세뱃돈이나 심부름 값으로 생긴 용돈을 의연금으로 보냈다.

일본 유학중이던 태극학회 회원 800명도 국내 국채보상운동에 감동을 받아 유학생 총회를 개최하고 단연(斷煙)을 결의하여 절약된 담뱃값을 국채보상금으로 보냈다. 미국과 러시아에 있는 해외동포들도 의연금을 모아 보냈다. 앞서 말했듯이 기독교인들이 이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국채보상운동 본부를 서울 YMCA에 설치하고 사경회, 강연회, 토론회 등을 통해 모금운동을 펼쳤다. 이 운동에 호응하여 일어난 기독교 단체는 진명부인회, 대한부인회 등을 비롯 지방의 선천 의성회, 안악 국채보상탈환회, 제주도의 삼도리부인회 등이 대표적이다. 인천에서는 기독교 여성들이 중심이 돼 조직된 국미적성회는 의연미(米)와 의연금품을 모았는데 80여명으로 시작된 회원이 수일 만에 500여명으로 증가했다. 이들이 한 달 동안 모은 18섬의 쌀은 아침저녁으로 식구당 일시(한 수저)씩 떠서 모은 것이다.

교인들은 헌금을 모아 의연금을 보내오기도 했다. ‘대한매일신보’ 1907년 4월 5일자 기사에 의하면 김문근이라는 교인이 국채보상운동 관련 연설을 한 뒤에 10환을 내자 듣고 있던 사람들이 앞 다투어 성금을 냈다고 한다. 3월 21일에도 김만준이라는 사람이 예배 후에 교인들로부터 120환 40전을 모아 대한매일신보사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뜨거운 국권회복의 열기가 비록 일본의 탄압과 관련자 구속 등으로 점차 퇴조했긴 하지만 이 때 크게 앙양된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은 그 후 독립운동의 정신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또한 모여진 의연금은 그 후 한국 국민들의 민립대학 설립운동의 재정적인 기초가 됐다. 이처럼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은 역사에 면면히 흘러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오늘날 우리들과 교회에게 세상 고난의 문제에 깊이 참여하고 서로 헌신하며 하나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국채보상운동은 누리는 운동이 아니라 철저히 헌신하는 운동이었다. 우리에게 사랑과 인내, 절제와 같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생각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 한국 교회는 사람들의 고난의 문제에 함께 참여하고 고민하며 해결하는 것을 선교의 과제로 삼았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비난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높은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며 사회참여를 요구하는 시대적 요청이다. 지난날 적은 수의 기독인이 사회를 주도하며 영향력을 끼쳤던 것에 비해 오늘날 비율적으로 더 많은 기독인들이 사회에 끌려가거나 이익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새삼 국채보상운동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