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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목사, 그의 삶 전체가 강력한 설교였다”
2012년 09월 08일 (토) 06:05:23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기독교역사연구원 ‘산돌 순교 기념 학술 심포지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이덕주 교수)가 1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에서 ‘제2회 산돌 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故 손양원 목사의 신학과 설교에 대한 부분이 집중 논의됐다.

이치만 교수(장신대)는 ‘손양원 목사의 신학 사상’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손양원 목사의 순교적 삶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어, 신학적으로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느낀 점도 많았다”며 손 목사의 사상으로 ▲성경중심 사상 ▲세대주의 말세론 ▲근본주의 신앙과 복음의 사회적 소명 ▲순교정신을 꼽았다.

손양원 목사는 1940년 10월 22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여수 경찰서에 체포됐었는데, 당시 일본 순사 가나기가 성경에 대해 묻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어서 나에게는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성경은 나의 유일한 신조요 신앙의 목표다. 성경 중에 기록된 것은 전부 그대로 실현될 것을 믿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 순사가 신사참배에 대해 묻자,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는 신이 없을 뿐 아니라 성서에는 ‘여호와 하나님 이외의 신에게 절하지 말라’, ‘내 앞에서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고 써 있다. 신사에 제사하고 있는 것은 신이긴 하나 여호와 하나님은 아니며 신의 형상을 하여 제사하고 있으니 이는 우상인 고로 참배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치만 교수는 “이러한 손양원 목사의 성경관은 한국기독교 초기부터 형성된 ‘성경제일주의’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초기 개신교가 전래될 당시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성경의 권위를 철저하게 신뢰하는 자들이었다. 형사처벌을 두려워 아니하고 성경이 ‘정확무오한 법칙’임을 전하는 손 목사의 모습에서 신념을 볼 수 있는데, ‘성경중심사상’이 신사참배 거부로 이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이 교수는 “손양원 목사의 말세론은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설’에 가까운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는 일본 성결교회 나가타 쥬지 목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손 목사는 제1회 신문조서에서 “전천년왕국 시대에 있어서는 분봉왕 아래에 신앙이 박약한 사람과 불신앙자가 백성으로 되어 있었지만, 무궁세계에 있어서는 불신자들은 예수님에게 준엄한 벌을 받아 지옥으로 추방을 당하고 진실한 신도만이 이 세계에 남게 된다”고 전했었다.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설은 역사적 전천년왕국설과 마찬가지로 천년왕국에 앞서 예수의 재림이 이루어진다는 설이다. 다만, 세대주의는 구원의 역사에서 시대적 구분을 두고 있다는 점이 다른 점이다. 이 사상은 특히 일제 강점기에 크게 유행했었는데, 어두운 현실을 기독교적 시각으로 해석하려는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손양원 목사의 세대주의적 말세론은 순교를 각오하는 정신으로 자라났다”고 했다.

또 “손 목사는 주의 재림을 대망하고 내세적 국가를 꿈꾸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현세의 삶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그는 현세 국가가 먼저 평화의 국가가 되도록 기도하는 사명을 놓지 않았다. 또 손 목사는 전쟁 통에 자신의 죽음이 뻔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양떼를 지키기 위해 남아 순교했는데, 이는 하나님이 맡기신 소명에 대한 순종이며 지순한 사랑의 결정체”라고 전했다.

양낙흥 교수(고려신학대학원)는 손양원 목사의 설교를 분석해 전했다. 양 교수는 “손 목사의 설교를 분석한 결과 식민지 백성이라는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느끼게 하는 설교도 있고 논리적 일관성이 부족한 인상을 주는 설교도 있으나, 어떤 설교에서는 그의 순수한 영성과 비범한 경건이 드러났다. 그의 설교에는 강력한 감화력이 있다. 그리스도를 위한 전폭적인 헌신을 촉구하는 설교들인데, 요즘 강단에서는 보기 힘든 십자가의 신학, 고난의 신학이 나타난다”고 했다.

이어 “교회사를 보면 설교문상으로는 특별한 내용이 없어 보이는데 실제 그것이 선포될 때는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설교들이 있었다. 손양원 목사의 설교도 이런 경우들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비록 설교문에 나타나는 내용은 초보적이고 때로는 빈약하기까지 해 보이나 현장에서 그의 설교를 듣는 이들에게 그것은 압도적인 은혜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양 교수는 “손 목사의 삶 자체가 가장 강력한 설교였다. 신사참배에 반대하느라 6년의 옥고를 치렀던 삶, 나환자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삶, 두 아들 죽인 살인자를 양아들로 삼은 삶, 양떼들을 지키기 위해 결국 순교의 제물이 된 삶, 이러한 그의 삶 전체가 어떤 청산유수 같은 설교보다 강력한 설교였다. 그리스도를 위해 아무런 희생도 감내할 마음이 없는 어떤 박식하고 유창한 설교자들 보다 비록 학문과 지식은 부족했으나 자신이 믿는대로 몸을 던져 살아간 손양원 목사야말로 위대한 설교자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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