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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도요다 다이쥬)의 정체를 밝힌다
북괴의 도움을 받아서 북괴에 굽실댔나?
2012년 06월 19일 (화) 22:34:13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도요다 다이쥬를 밝힌다 (5)

김대중(金大中) 1925. 12.3 生 ,  창씨개명 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

金大中의 매국과 부정

김대중 선생 귀하.

이번 대선의 큰 사업을 앞두고 분망하실 선생에게 따뜻한 인사를 보냅니다. 그 동안 어려운 길을 걸어온 선생의 오랜 소망과 뜻이 성공의 빛을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선생과 협력해오던 지난날이 회억 되면서 감개무량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선생과 처음으로 상면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6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요즘 텔레비죤 화면에서 선생의 모습을 볼 때마다 1971년 가을 일본 도꾜 플라쟈 호텔에서 서로 뜨겁게 포옹 하던 때가 생생히 떠오르곤 합니다.  

그때는 물론 약소하였습니다. 선생의 민주화 운동을 위해 20만 딸라 밖에 보탬 해 드리지 못한것 지금도 괴롭게 생각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선생을 오늘의 성공에로 이르도록 돕는데 밑거름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보람을 찾습니다. 선생이 어느 회합에서 말씀 하셨지만 조국 통일의 앞길에는 의연히 많은 난관이 있습니다. 지금에야 말로 이남에서 자주적인 민주 정권이 서야 북과 남이 민족 주체적 힘으로 통일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할 때이라고 간주 합니다. 나는 선생이 대선에서 꼭 승리 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선생과의 상봉을 확약 하면서 옥체 만강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주체 1997년 12월 5일 평양에서

조선사회 민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김병식

 

이랬다.

15대 대통령선거 불과 13일을 앞두고 김병식이 김대중에게 보낸 편지전문이다. 김병식은 조총련 중앙위 위원장 출신이며 북괴 부주석 지위에까지 올라간 者다. 김병식의 배려와 독려에도 불구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대북지원 무게와 속도감이 없자 참다 못한 김정일은 북한 대남비방 선전.선동 나팔수 한국민족민주전선을 동원해 김대중의 부정부패행위를 까발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국민족민주전선은 김대중정권 1년 5개월만인 1999. 7.19일 김대중 역도의 부정부패행위를 고발한다는 제하의 글로 사정없이 김대중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1982년 말 5.18로 인해 희생된 광주영령들을 팽개치고 앙망편지로 저 한목숨 구걸한 후 미국으로 줄행랑친 시점부터 한민전은 음성적으로 김대중 등짝에 주마가편 채찍을 들이댔다. 

김대중 부정비리에 관한 한민전 폭로의 글이다.

 1982년 미국으로 떠나며 전두환 前대통령에게 30만불 받은 것을 시작으로 후일 평민당 창당자금 300억을 全대통령에게 따로 받았다. 전두환 대통령이 대통령의 예우를 받을 수 없게 된 것을 외교관여권을 주어 방일할 수 있게 한 대가로 5백억 원의 사례금을 또 받았다. 노태우 前대통령에게는 김대중 본인이 받았다고 털어놓은 20억은 껌 값이고 6공 비리에 관한 중간평가 유보를 떡밥으로 수차례에 걸쳐 총 1200억을 갈취했으며 집권 후 재벌과 기업주를 상대로 개혁과 구조조정을 내세우며 압박을 가해 총 5000억에 달하는 통치자금 즉 비자금을 쉽게 확보했다. 

이외에도 미국한인사회서 광주희생자들을 위한 모금과 민주화운동 자금으로 들어온 수백만불. 여기에 평민당 공천사례금으로 거둬들인 돈 등을 모두 합치면 대략 8000억 정도가 될 것이다. 여기까지 전부가 아니라 이외 약 7개항의 부정비리폭로가 있으며 1998년 10월 독도의 영유권을 포기하고 어부들의 황금어장을 넘기는 것을 골자로 하는 신한일어업협정 체결대가로 뒷주머니에 들어간 돈까지 한국민족민주전선은 아주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폭로했다.

1차 폭로 5개월 후 1999년 12월 일본 문예춘추지에 김정일이 김대중을 압박하는 육성녹음 전문이 소개됐다. 김일성수령으로부터 사랑과 배려와 도움을 받고도 배은망덕하다는 내용이다. 이때 동 김병식이 위 김대중에게 대통령 당선을 기원하며 보낸 편지가 처음으로 함께 공개됐다. 한국민족민주전선은 金大中의 부정축재 비리를 앞서 폭로하고 김정일은 직접 金大中의 매국적 반국가적 활동을 스스럼없이 밝히기 시작했다.

다음은 김정일이 육성으로 까발린 김대중의 친북 행위다.

아버지 김일성 수령님은 김대중이 민족주의자이면서 애국주의자라 말씀하셨다. 수령님은 김대중 역도에게 사랑과 배려에 동지적 신뢰를 무한히 보내셨다. 그래서 김대중은 수령님 은덕에 대한 보답으로 야댱 시절 민주화를 외쳤고 민족자주와 미군철수 등을 주장했다. 이런 김대중이 남조선 두목(대통령)이 되자 북한 동포와 민족을 위한다는 태양정책을 속히 이행하지 않고 있어 이는 우리 공화국을 혼란에 빠트리는 기만이며 수령님께 대한 신뢰와 의리를 버리고 오직 배신으로 대답하는 것이다.

동 시기에 노동당기관 잡지 구국전선은 책자와 전단을 통해 김대중의 불법자금 스위스은행 보관 사실을 휴전선과 해외동포들에게 뿌리며 김일성주석의 은혜에 빨리 보답하라는 압박을 가했다. 2차에 걸친 폭로와 압박 이후 2000.3.9일 김대중은 베를린자유대학 연설에서 햇볕정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명분을 확인 한다. 소위 베를린선언 대북정책 WIN-WIN은 한마디로 그냥 퍼주기다.

여기서 북한정권보장에 대한 세 가지 공략을 했다.

북한의 경제회복을 돕는다.

우리는 북한의 안정을 보장한다.

북한의 국제적 진출에 협력한다.

인간백정 김정일의 아가리가 귀에 걸릴 정도의 기가 막히게 달콤한 공략이다. 드디어 노벨상을 기만하는 지구상 최대의 왕구라 햇볕정책이 그 간판을 올린 것이다. 베를린선언 3개월 후 대북특사 박지원을 실무총책으로 남북정상회담 6.15가 예약됐다. 결과적으로 겉으로만 정상회담이지 명분도 실리도 없이 약점 잡힌 김대중이 허겁지겁 김정일에게 퍼주는 일방적 거래에 불과했다.

2000년 6.15일 美 CIA는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과 김정일 단둘 동승한 차내 왕복 90분간의 밀담(密談)을 첩보위성 등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 가까스로 녹취에 성공했다. 일본에서 2004. 12.4일 발간된(출판사 일신보도. 저자 미도히로미찌) ‘김정일 파멸의 날’이 교보문고에 들어왔고 이 책의 188-189 쪽에 김대중과 김정일의 밀담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다. (편집자 주: 이런 밀담사실에 대해서는 명백한 증거를 아직까지 확인할 수 없음)

김대중의 남로당 관련서류와 김일성이 뒈질 때까지 김대중에게 제공한 자금지원 등이 기록돼 있는 자료를 꺼내 놓고 ‘이들 자금이 도움이 되었습니까’ 조용하면서 고압적인 김정일 목소리다. 이에 金大中은 꺼져가는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말을 주절거린다.

* 생전의 김일성 수령님을 만나 뵙지 못해서 유감입니다.

* 납치사건에 있어서 여러 모로 힘을 써 주셔서 오늘 날의 제가 있었습니다.

* 광주사태로 인해서 사형판결을 받았을 때에도 생명을 구해주셨습니다.

* 수령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김 총서기님과 협력하며 살고 싶습니다.

* 남북 평화협정을 조기에 체결하고 싶습니다.

*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민족을 자주적으로 통일하는 데 매진하고 싶습니다.

* 북조선에 경제재건을 위해서 의욕적으로 협력하겠습니다.

* 클린턴 미 대통령과 일본 총리를 조속히 평양에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런 金大中!!

이래서 필자는 김대중을 매국노 이완용 이후 민족최대의 반역자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만고역적 金大中!!

전향 못한 주사파에 대한민국 국민이 위임한 국가통치권을 배임(背任)한 者로 강력히 정의한다.

2012 정권재창출

 

도요다 다이쥬를 밝힌다 (1)

김대중(金大中) 1925. 12.3 生

창씨개명 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

金大中 군복무 사실인가

죽으면서까지 회개는커녕 이 땅에 거짓의 씨앗만 남긴 金大中.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저 인간은 숨 쉬는 것 빼고는 전부 거짓말이라고 일괄한 바 있다. MB가 미필인 것은 전국민이 다 아는 사실 김대중 미필은 대개 잘 모른다. 김대중 자서전과 사이버기념관에는 6.25 당시 김대중이 목포해상방위대 해군 장교로 북괴 함정들과 학익진 등의 전술을 펼치며 함대를 지휘했다는 군복사진이 버젓이 붙어 있다.

더불어 김대중사이버기념관 연보에 아래와 같은 것이 기록 돼 있다. 1950년 6.25가 터지자 서울 출장왔던 김대중 걸어서 목포까지 왔으며 이듬해 1951년 목포흥국해운 사장에 취임한 후 사업가로 활동 무대를 넓혀 나갔다. 김대중이 둘이었나? 한 놈은 북괴군과 피터지게 싸우고, 또 한 놈은 전시에 사업가로 변신해 돈 벌고, 끝내 전향 못한 빨갱이 김대중의 뻔뻔스럽고 새빨간 거짓이며 조작이다.

김대중은 한술 더 떠 대통령 취임 전 예비역준장 송인명에게 목포해상방위대 근무 사실 증명서를 발급받는다. 이에 보다 못한 익명의 애국지사가 금년 5월 해군본부 감찰과에 김대중 군복무 사실에 대한 민원을 제기하게 된다. 해군참모총장 명의 답신에 김대중은 해군 복무는커녕 입대 사실조차 없으며 송인명이 발급한 증명서 역시 해군에서 발급한 것이 아니라고 정확히 확인해 준다.

지난 10월 타계한 경향신문 기자출신 故 손충무씨는 김대중 정체 밝히는 것에 평생을 다 받힌 열혈 애국지사다. 처음으로 김대중은 첩의 자식이라고 밝혔다가 괘씸죄에 걸려 김대중 취임 즉시 구속된 사건은 한국정치사에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김대중 사후의 자서전에서 자신은 첩의 자식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하지만 무고하게 옥살이 시킨 손충무씨(당시생존)에게는 끝내 사과하지 않고 죽었다. 손충무씨와 뜻을 같이하던 사람 중 김대중의 고향친구 김진하의 증언에서 김대중 해상자위대 복무 운운 실체가 제대로 드러난다.

김대중은 해방 후 남로당 간부로 활동한 사실에 의해 6.25 동란 중 미군에 의해 총살자로 분류돼 미군함정에 실려 남해 바다에서 처형될 위기에 처했다. 동 김진하가 호명에 응하지 말라고 하며 갖가지 재치를 발휘해 구명운동을 한 덕에 김대중은 겨우 살아남았고 이 사실은 일본 CIC 한국전 비밀문서에도 기록 돼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김진하 회장은 대한민국 국민이 김대중에게 너무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45년만에 신앙고백을 통해 위 내용을 처음 밝혔다는 것에서 현실적이며 사실성이 더하다. 김대중의 거짓말은 의형제이자 전쟁광 김일성은 물론 인간미 좋고 호쾌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우는 인간백정 김정일에게 마저 습관처럼 튀어 나왔다.

김정일과의 대화에서 전라도 사람이라 고집이세다고 하자, 김대중 왈 내가 왜 전라도 사람입니까 김해김씨 경상도 사람입니다. 유명한 얘기다. 이래도 김대중은 자신은 평생 거짓말 한번 못해본 사람이라는 소도 하품할 개소리를 틈만 나면 지껄이며 행동하는 양심을 바로 내세운다. 김대중은 위선으로 철저하게 무장돼 있어 목적을 위해서는 부모도 고향도 경력도 삽시간에 세탁하고 위증하는 이 땅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그야말로 악의 축이다.

 

2012 정권재창출

도요다다이쥬 2편 김대중에게 버림받은 광주

도요다 다이쥬를 밝힌다 (2)

김대중(金大中) 1925. 12.3 生

창씨개명 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

金大中에게 버림받은 光州

빛의 고을 光州 그 아름답고 전통 깊은 곳을 자신의 입신영달과 목적을 위해 씻지 못할 상처와 피로 물들인 자가 있으니 바로 만고역적 매국노 김대중이다. 5.18 광주시민의 아픔과 통곡을 외면한 채 미국으로 허겁지겁 줄행랑친 金大中.

왜 광주는 김대중에게 버림받은 도시인가 냉정한 자세로 새삼 따져볼 일이다. 놀랍게도 5.18을 민주화 운동이 아닌 폭동으로 미리 정의한 장본인이 金大中이다. 살아남기 위한 위선의 몸부림,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시킨다 했으나 저 한목숨 구차하게 건지려 그렇게 증오하던 신군부에게 매달린 비겁한자가 김대중이며 훗날 우리가 봐야 했던 '화려한 휴가'는 맞춰지고 편집된 픽션일 뿐이다.

 金大中은 5.18 하루 전 신군부에 의해 구속됐고 그해 11월 내란음모죄로 사형이 선고됐다. 우선 사형을 면하기 위한 목적으로 신군부가 추궁하는 모든 걸 그대로 인정했다. 5.18은 불순세력들의 내란에 무장 봉기이며 총과 폭약을 탈취한 자들의 폭동이었다고. 

이렇게 조사에 순순히 응한 김대중이었으나 훗날 이 진술은 확 달라진다. 대통령 당선 전 김대중은 방송에 출연해 5.18 당시를 회자하며 저 역도들과는 절대 타협할 수 없었으며 차라리 내 목숨을 던지고 말겠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방송에서 뇌까린 목숨 운운은 당선을 위한 또 하나의 위선이고 새빨간 거짓이었다.

김대중의 앙망(仰望) 편지가 그 이유다.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김대중은 감방에서 대통령에게 1차 편지를 보내 목숨을 구걸했으나 단호히 거절당하고 말았다. 절대 타협할 수 없다고 했으나 신군부에 추접하게 매달렸고, 목숨을 버린다 했으나 그는 광주와 운명을 같이 하고픈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살아남았다.

수많은 생명들이 김대중 석방을 외치다 비명에 피를 흘리며 처절하게 죽어갔다. 김대중은 광주 영령들의 통곡과 함께 광주를 위해 초연히 목숨을 버렸어야 했다. 광주시민과 함께 목숨을 버리려 했다는 말은 역시 당선을 위한 거짓으로 종결된다. 이래서 거짓의 달인 김대중은 희대의 사기꾼에다 광주 5.18 최대의 변절자인 것이다.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 光州. 후일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하늘이 내려준 성군으로 여기며 감히 그를 범접하지 못한 어질고 순수한 호남의 민초들. 그의 세 아들 홍삼트리오가 수십 수백억을 차례로 해쳐먹고 줄줄이 감방에 끌려가도 그저 사담후세인 자식들 보다는 낫다며 끝까지 김대중을 믿고 밀어주었다.

김대중은 전두환 대통령에게 다시 고뇌에 찬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 내용에도 5.18이 폭동이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편지 전문

전두환 대통령 각하

국사에 전념하신 가운데 각하의 존체 더욱 건승하심을 앙축하나이다.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본인은 교도소 재소생활이 2년반에 이르렀사온데

본래의 지병인 고관절변형, 이명 등으로 고초를 격고 있어 치료 받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각하께서 출국허락만 해 주신다면 미국에서

2~3년간 체류하면서 완전한 치료를 받고자 희망하온데 허가하여 주시면

감사천만이겠습니다. 아울러 말씀드릴 것은 본인은 앞으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일체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으며 일방 국가의 안보와 정치의 안정을 해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음을 약속드리면서 각하의 선처를 앙망하옵니다.

1982년 12월 13일 金大中

(오오미 어째 울 슨상님이 요로콤 살려달라 했을까잉 아니랑께여)

 

오열하는 광주는 뒷전 오로지 혼자 살아남겠다는 문제의 앙망 편지다. 내용 중 '일방 국가의 안보와 정치의 안정을 해하는 행위'라고 한 것은 5.18이 단순시위 데모수준이 아니라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나아가 북괴의 지원으로 무력내전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의미에서 쓴 편지라는 것이다.

5.18 이후 왜 북괴는 광주민중봉기 기념관을 세우고, 5.18 잠수함을 만들고, 역마다 5.18을 찬양하는 구호를 새겨 놓고 해마다 평양중앙노동자 회관에서 기념행사를 가지는 것인가.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5.17일 광주민중봉기 30돌 기념행사를 동 장소에서 성대하게 가졌다. 

이를 근거로 아래는 광주 5.18에 관한 역설적 물음이다. 광주시민들이 과연 북한에 5.18기념관을 세우기 위해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린 것인가, 광주시민들이 과연 북한에 잠수함 명을 새겨 넣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투쟁을 한 것인가, 광주시민들이 과연 북한에 기념행사를 기대하며 폭도의 오명을 들으며 끝까지 싸웠던 것인가?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하고 말할 수 있는 광주시민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이런 연관성으로 5.18은 김대중이 구속되기 전부터 광주의 피를 재물로 삼고자 했고 북괴와 내통하며 국가전복을 꾀하고 있었다는 것이 어렵지 않게 그냥 드러나는 것이다. 

김대중 살아생전 호남인들에게 특히 광주시민에게 무엇을 해줬나? 광주민주유공자증 하나 던져 놓은 것으로 할 일을 모두 했다는 것인가? 정권이 바뀌면서 5.16이 군사반란으로 5.18이 민주화운동으로 재평가 됐다. 광주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제정으로 신군부가 누리던 모든 특혜는 물론 서훈.훈장 전부 취소된 사실에 힘의 역사는 무엇이든 또 변화 시킬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앙망 편지 후 곧 바로 대통령특별 사면에 의해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떠난 金大中. 여기서 주지의 사실은 당시 김대중이 20년으로 감형된 상태이지만 그때 나이로 볼 때 인생 종친 형기가 남았으나 미국에 도착하자 강제 추방했다는 거짓으로 자신의 건재를 부각시켰다.

최근 역외탈세 차단에 나선 정부는 스위스와 조세조약계정협상을 사실상 마무리해 내년 초 공식 발효되면 의심되는 계좌 내역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만약 김대중이 광주의 아픔과 발전을 외면하고 숨겨 놓은 천문학적인 돈이 튀어 나온다면, 그 날로 광주의 김대중컨벤션센터는 검은 화염으로 휩싸여 한줌의 재로 사라질 것이 뻔하다.

범세계적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 미국의 수재들이 머리를 맞대고 세계적 이슈나 정책을 검토해 분석 결과를 리드해 주고 있다. 한국에 입국한 이 재단서 광주시위를 면밀히 조사한 후 단호하게 반정부무장 폭동(Riot)으로 최종 결론 내린 바 있다.

결국 빛고을 光州는 김대중의 붉은 야욕에 의해

명분도 실리도 남은 것이 전혀 없는 회색빛 도시가 돼 버렸다.

 

도요다다이쥬(3) 金大中 親日인가

김대중(金大中) 1925. 12.3 生

창씨개명 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

金大中은 親日인가

집권 후 측근 간신모리배들과 쓰레기언론을 총동원해 원수보다 더 싫은 故박정희 前 대통령을 끊임없이 친일파로 음해한 金大中은 과연 친일사상과 전력에 흠이 없는 깨끗한 者인가.

'센세이 아노 도요다 다이쥬 데스요' 만고역적 김대중이 대통령 당선 후 목포상고 왜놈 스승 무쿠모토 이사부로에게 달려가 저처럼 정중하게 인사말을 올렸다. 왜놈 스승 이사부로는 조선총독부 교육청 훈도담임선생으로 일제강점기 내내 우리 민족에게 황국신민조선을 교육시켜 민족얼 말살에 나섰던 전형적 침략주의자다.

김대중은 중. 고 교육 모두를 일제교육청소속 학교에서 받아 日語가 자유로웠다. 졸업 후 왜놈이 경영하는 목포해운회사에 들어가 뛰어난 일본어를 앞세워 사주를 구워삶은 덕에 징용. 입대 모두 피할 수 있었고 종내는 젊은 나이에 회사를 물려받게 된다.

김대중 평민당 총재시절 민족원흉 히로히토가 저 세상으로 갔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전두환 前대통령은 일왕 조문을 꺼려했으나 매국노 金大中은 일본대사관 뒷문을 통해 몰래 들어가 90도로 깍듯이 조문을 했다. 그 누구의 조문강요도 없었고 일본정부의 공식조문 요청도 없었으나 김대중은 끝내 조문을 갔고 이것이 경향신문에 포착되어 1989. 1.9일 사진과 함께 특종보도 됐다. 민족수탈 수괴에다 전범 총책임자에 대한 조문행위는 국민정서에 반하는 명백한 친일행위다.

이런 천하의 반민족행위자 김대중이 1998년 정권을 잡은 후 공식적인 일본방문을 앞두고 아키히토 일왕의 정부공식호칭을 천황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 국내의 반대여론과 논란이 많았으나, 김대중이 강력히 밀어붙여 1998.10월 방일을 앞두고 천황으로 공식 명명하게 됐다.

김대중은 일본 공식방문 중 왜놈들과 입을 맞춰 독도해역 반을 즉시 일본에 넘겨준다. 신한일어업협정 이라는 망국적 간판 아래 독도를 포함 울릉도 33해리까지 한국.일본이 공동 관리하는 수역을 확정해 우리영해의 주권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스스로 포기했다. 일본에게 독도 침탈 빌미를 제공한 이 굴욕적 협정은 친일부역(親日附逆) 행위나 다름없다.

어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어선 700여척이 헐값에 강제 폐선 처리됐으며 가수정광태의 독도는 우리땅 노랫말은 금지곡으로 독도주권과 대한민국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하고 사라졌다. 민족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를 일본과 뒷거래한 돈으로 건설한다 하여 공사 현장에 달려가 자빠져 누워 시위에 가담했던 金大中. 여기서 대한해협을 일본에 팔아넘겼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당시 박정희대통령은 대한해협은 물론 독도에 관한 자주권에도 완고해 일본외교부장이 2억을 들고 찾아와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헛소리하는 것을 박대통령이 무례한 외교관이라 소리쳤다. 이어 대통령은 차라리 독도를 부숴버리겠다며 호통을 쳐서 쫓아냈고 결국 독도는 우리 영토로 온전히 보존되면서 오히려 태평양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수탈한 보상금 8억을 따로 또 받아냈다.

2002년6.29일 제2연평해전 발발 당시 북방한계선(NLL)에 무력도발 징후가 있어 함대사령관의 선제사격 요청이 있었으나 김대중은 북한이 공격할시 반격하라는 어이없는 교전수칙을 하달했다. 국군통수권자로서 본분을 망각한 김대중의 교전수칙에 손발 묶여 싸운 우리 장병들은 故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6명의 전사자가 발생했으며 교전 중 손발이 잘려나가는 처참한 공격을 당해야 했다.

바로 다음날 우리 軍을 버린 김대중은 장례식 참석을 외면한 채 검은 리본은커녕 빨간 넥타이를 매고 일본으로 건너가 왜왕 아키히토 내외와 함께 월드컵 결승전을 보며 킬킬거리며 웃고 있었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장병들 영결식에 정부관계자 단 한명도 참석치 않았고 5일장을 3일장으로 축소한 후 대통령장이 아닌 해군장으로 결정 장병들은 마지막 가는 길까지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 서해교전을 제2연평해전으로 명명하고 매년 국가보훈처가 기념식을 주관하는 정부주관행사로 격상시켜 비통한 눈물로 살아온 유족들의 상처를 뒤늦게나마 어루만졌다.

김대중 집권 중인 2002. 9.7일 상암동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남북통일축구경기. 주최측은 방임된 공권력 속에 입장하는 관중들로부터 태극기를 압수하고 대신 한반도기(좌익 깃발)를 손에 쥐어주면서 조국의 태극기가 쓰레기처럼 굴러다니고 구석으로 쌓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래서 전쟁광 김일성이 뒈지기 전 의형제와 다름없는 김대중을 확실히 믿은 나머지 '남한은 한 세기가 지나기 전 총 한방 안 쏴도 공산화 할 수 있다'라며 자신감을 보인 것이다.

으리으리한 동교동 아방궁부터 김대중광장. 김대중도로. 김대중광주홀. 김대중역. 김대중백화점. 김대중박물관. 김대중도서관. 김대중미술관. 김대중기념관, 김대중컨벤션센터. 그리고 나라곳곳에 수없이 세워져 있는 어마어마한 김대중의 동상과 흉상들.

드러나고 확인된 진성 親日 金大中!

金大中에 비해 변변한 기념관 하나 없는 바보 대통령 두 사람.

공산당이라면 무조건 때려잡은 故이승만 건국대통령.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일괄하며 김일성에게 무조건적

사과를 받아낸 故박정희 대통령. 글을 마치는 이 순간 너무나 그립다.

 

도요다 다이쥬를 밝힌다 (4)

김대중(金大中) 1925. 12.3 生

창씨개명 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

金大中의 親北

金大中!!

정치적 야욕(野慾)에 눈이 멀어 평생을 거짓으로 덧칠한 채 끝내 붉은 옷을 벗지 못한 정치모리배로 그의 일생을 정의해야 마땅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철저한 경계의 대상 金大中! 민족 분란의 중심에는 언제나 붉은 색의 그가 도사리고 있었다. 인생 말년(末年) 6.3 빌딩에 김정일 매머드사진을 걸어 놓고 알아듣기조차 힘든 꺼져가는 소리를 내면서도 '김정일은 죄가 없고 억울한 사람이다'를 심어 놓은 者.

오욕칠정(五慾七情)을 쉬 버리지 못해 모질고 질긴 숨통을 붙들고 구천지옥(九泉地獄)을 오가면서까지 '국민의 이름으로 들고 일어나 이명박 독재정권 심판하자'를 부르짖은 金大中!

의형제인 전쟁광 김일성을 만나 대남적화 공작금 20만불에 ‘민주화’라는 용어를 생산해 냈을 당시는 북한 노동당 6호 동지로 불렸고 대통령당선 뒤에는 북한 실질적 권력 3인자로 회자됐다. 북한은 문성근 애비 문익환 사망 이후 기념우표까지 발행했으나 5.18 내란 폭동 사주에다 햇볕퍼주기 영웅 金大中은 문익환 서열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가히 절대자의 위치였다는 것이다.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3층 중앙 홀에 안치된 김일성 미이라. 2000년 방북시 사체알현을 요구하는 북측에 의해 확인한 후 구소련 기술에 의해 무려 9억불을 들인 시체장사를 두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김일성.김정일 단 두 명이 2大에 걸쳐 약 700만명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간 백정 짓은 뒷전인 것이다. 김씨 왕조3대 김정은 세습이 이뤄지면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을 추수하듯 거둬갈는지 의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호랑이가 아니고 빨갱이다' 6.25를 지옥처럼 경험한 어른들 얘기다. 이 시각에도 북한 교화소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이 생체실험실유리 상자 속에 갇혀 분수처럼 피를 토하고 진공실험에 의해 가족들간 육신이 오그라들면서 서로의 살을 손톱으로 후벼 파면서 불쌍하고 한 많은 처절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인간 생명 존중과 존엄은 저 멀리 이렇듯 잔혹. 잔인함은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빨갱이들 즉 金大中이 찬양 경배하는 주사파에 있다.

2009.8.23일 김대중이 현충원에 묻히는 날 光州는 통곡하지 않았다. 5.18 민주화운동을 신군부가 폭동으로 정의해도 저 한목숨 살아남기 위해 방임한 사실. 여기에다 피맺힌 광주보다 오히려 5.18을 세계적 민중봉기로 더욱 선전하고 경축하는 북한정권의 광란에 광주시민은 의아스러웠으나 후일 김대중과의 연관성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광주시민은 억울한 것이다. 민주화를 위해 싸웠지 결코 북한을 위해 투쟁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호남의 맹주 광주의 희망 김대중은 당연히 5.18 묘역으로 가야 했으나 사망前 이미 거부했었다. 이래서 국회의사당 영결식에는 빈 의자가 절반을 넘었고 國葬에 무색하게 국민들의 조기(弔旗) 게양을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심지어 그날 光州까지 평상시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김대중의 대국민 선전.선동의 구호를 살펴보면 깊이 판단할 것 없이 주사파임이 그냥 드러난다. 김정일과 북한은 억울하다 독재가 다시 살아나고 빈부격차 사상 최악이며 국민도 불행해 지고 있다. 들고 일어나라, 할일 없으면 인터넷에 글이라도 쓰고 벽에다 욕이라도 해라 투쟁하라 가급적 많은 사람들을 모아 집회를 하라 분하고 억울하다 정부를 지지 못한다고 하고 시위로 독재정권 심판하라.

정권을 빼앗긴 김대중은 말년에 국가 내란을 선동한 정도가 아니라 명백히 지시하고 명령한 것이다. 지역민을 볼모로 잡고 선동과 체제전복을 꾀하는 매국노는 이 땅에 두번 다시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 이런 者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현대를 앞세워 조성한 공적자금 300억불. 이중 회수 불능한 200억불이 금강산 관광이라는 그럴듯한 간판에 분단 후 최대의 남북합작 판도라 상자인 햇볕정책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공식적으로 김정일에게 갖다 바친 7억불은 할머니 효도 용돈에도 못 미치는 껌 값에 불과하다.

6.15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김정일이 30억불을 요구했으나 15억불 선에서 마무리됐다는 것도 대북송금특검에 맞추려 마지못해 나온 요설(饒舌)임을 감안할 때 뒷주머니는 아직도 불룩한 것이다. 지구상 둘도 없는 왕구라 햇볕정책. 평화정착이라는 절대명분 앞에 그 누가 감히 토를 달았겠는가.

습자지 하나 말리지 못한 햇볕정책의 계승자 뇌물현. 상왕의 엄명에 정신줄을 놓고 '막 퍼주어도 남는 장사 아닙니까'라며 정말 바보천치 같은 광대놀음으로 끌려 다니다 결국 팽(烹) 당하고 말았다.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지난 정권을 깡패정권 강도정권 운운하며 누워서 침 뱉어 버린 김대중! 수상 후 金正日 위원장이 함께 수상하지 못해 서운하다며 끝내 대한민국 자체를 외면하고 비하했다. 우리의 안보와 정신적 무장해제를 노렸던 햇볕정책이 핵공갈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으나 '북한에 핵무기가 있으면 어떤가. 통일 되면 전부 우리 것 아니냐'라고 아직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제는 천길만길 침침한 음부(陰府)의 나락(那落)으로 속절없이 떨어진 만고역적 김대중! 카피해 와서 평생 우려먹은 행동하는 양심을 뒤 늦게 지옥불 속에서나마 회개하는 양심으로 바꾼다 해도 이 나라 이 조국 자유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대한 사죄는 백번 만번 부족할 뿐이다.

2012 정권재창출

[대마왕 (올인코리아 회원) 네티즌 논설가: http://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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