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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진 목사 활동했던 '도시산업선교회의 正體'
애창했던 노래 <정의파>: “굴뚝마다 연기 뿜어 세상공기 흐려놓자”
2012년 06월 14일 (목) 06:38:47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도시산업선교회 조직도.

12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종북문제와 관련해서 새누리당이 좀 너무 오버하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한 인명진(목사) 前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은 1972년부터 12년 동안 ‘도시산업선교회’ 총무(1979년 당시에는 서기로 활동)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해방신학’에 기반을 둔 ‘도시산업선교회’ 산하 조직원은 1970년대 말 핵심멤버가 약1천명, 동조세력 약2천여 명으로 추산됐다. 1979년 8월18일자 <경향신문>에 보도됐던 ‘도시산업선교회’의 활동유형을 보면 아래와 같다.

1. 근로기준법을 교육시켜 법정기준보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분개심을 북돋워준다.

2. 기존노조를 어용노조라고 불신케하여 자파(自派)세력을 노동조합에 침투시킨다.

3.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여 대정부 불신감을 조성하기로 한다.

4. 노동계의 문제점을 해외에 폭로하여 한국의 노동조합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기도 한다...(중략)

 

이들의 교육기관인 수원아카데미 하우스의 교육내용을 보면 ▲인원 1회 40명 정도 ▲기간 4박5일 ▲반편성 1실에 4명(직계 1명 투입) ▲교과목 농경기부터 현재까지의 노동자 농민들의 공적사항과 피착취 사항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교육방법은 다음과 같다.

▲5분 발언대를 마련하여 각자 대사용주 투쟁사를 발표토록 한다 ▲매일아침 명상의 시간을 갖고 음악을 들려주면서 특정인의 대사용주 투쟁사를 낭독해준다 ▲노동운동가로서 앞으로의 투쟁계획을 연도별로 수립토록 한다 ▲죽은 뒤의 자기비문을 스스로 작성케 한다 ▲마지막 촛불의 밤에는 전태일의 일대기와 분신자살을 묘사한 추모식을 가진다 ▲농민반과 노동자 반원을 합석시켜 우리 노동자-농민이 대우받는 세상을 만들자고 결의를 시킨다 ▲이조시대 상민이 양반을 우롱하는 풍자극을 보여준다 ▲자료 반출은 일체 금지한다.

 

그들이 애창하는 노래: 제목 <정의파>

 《우리들은 정의파다 좋다좋아. 같이 죽고 같이 산다 좋다 좋아. 무릎을 꿇고 사느니 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많이 많이 좀 더 많이>...(중략)

굴뚝마다 연기 뿜어 세상공기 흐려놓자. 많이 많이 좀 더 많이 많이 많이 좀 더 많이 배기가스 많이 뿜는 자동차를 생산하자. 유해색소 많이 섞고 부정식품 생산하자 물고기가 못살도록 강과 바다 더럽히자》

▲사후 관리 교육이 끝난자들을 목요회에 가입시켜서 목요일마다 강원룡 목사(기자 注: 하단 '관련기사' 참고)가 시무하는 경동교회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친목을 도모한다. 그리고 여자들은 별도로 여성해방투쟁기수회에 가입시킨다.

[관련기사] 크리스찬아카데미 설립자 강원용, 여운형과 함께 활동

2012년 3월13일자 <조갑제닷컴> 보도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설립한 인물은 강원용(姜元龍) 목사(1917년 10월30일~2006년 8월17일)로 함경남도 이원군 남송면 원평리 출신이다.

농민의 자녀였던 姜목사는 1931년 차호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35년 만주 용정 중학으로 진학, 이곳에서 문익환(문성근 現민통당 최고위원 父親)을 만나 인연을 맺었다.

1940년 일본의 명치대학 영문학부를 졸업한 뒤, 만주에서 전도사 활동을 했다. 1945년 8월15일 광복 이후 귀국, 서울로 돌아와 경동교회를 설립했다. 1946년 이후 김규식과의 인연으로 김규식-여운형 등이 주도하는 좌우합작위원회에서 위원으로 활동했다.

1947년 여운형이 한지근에게 암살된 뒤 김규식 등이 1947년 12월 민족자주연맹이 결성되자 민족자주연맹 기획담당 책임자로 참여했다. 1948년 한신대학교를 졸업한 뒤 목사 안수를 받고 1949년 김재준 목사의 후임으로 경동교회 목사로 부임했다.

1954년 캐나다 마니토바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1956년)을 거쳐 1957년 미국 뉴스쿨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뒤 귀국했다. 1959년 크리스찬아카데미의 전신인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회를 설립, 산업사회와 종교 등의 주제로 강의, 세미나, 학술대회 등을 개최했다. 이후 종교간 대화, 페미니즘 운동, 노동 운동 등에 나섰다.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산업사회교육을 이수했던 최순영 前 민노당 의원.

 

姜목사는 노무현 정권이후 1967년 발생한 민비련(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을 비롯, 1974년 인혁당 재건위(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1979년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 등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자 이들 사건에 대해 “100% 사실이라거나 100% 조작이라고 强辯(강변)하는 것은 양쪽 다 똑같은 黑白(흑백)논리”라고 주장했었다.

현재 대화문화아카데미로 단체 명칭이 바뀌어 운영되고 있는 크리스찬아카데미에는 남재희(前노동부장관), 송월주(前조계종 총무원장), 윤후정(前이화학원 이사장), 이어령(前무화부장관), 이홍구(前국무총리, 중앙일보 고문), 정의숙(前이화여대 총장), 정원식(前국무총리) 등의 인사들이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강원용 목사가 설립한 크리스찬아카데미는 ‘중간집단 양성교육’을 통해 각계각층에 페미니스트 리더들을 배출했다. 여기서 ‘중간집단’이란 사회개혁에 관심을 가지며 民衆(민중)의 편에 서서 힘을 조직화·동력화함으로써 그들과 함께 양극화 사회의 화해와 통합에 기여하는 세력을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이 이론은 한국 사회를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이중 구조로 보고 있다.

 크리스찬아카데미는 주로 노동, 여성, 농민, 학생, 교회단체 회원을 수강생으로 이 방면의 전문가들이 강사로 참여하면서 합숙 세미나와 강의 등 정규교육과 함께 현장 방문 및 교육, 소그룹 운용, 활동평가회로 후속교육을 했는데, 이 교육의 간사로 활동했던 대표적 인물이 바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이다. 크리스찬아카데미는 가장 활동이 왕성했던 70년대 중후반까지 아카데미 교육을 이수한 여성들이 페미니즘 운동의 큰 흐름을 형성했다.

<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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