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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4 전당대회를 마치고
2011년 07월 18일 (월) 16:57:55 한기총신문 webmaster@ccnkorea.com

홍준표 대표를 포함한 새로운 지도를 선출한 7.4 전당대회를 앞두고 소집된 7.2 전국위원회에서는 집권당의 행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희한한 광경이 벌어졌다. 당을 장악하고 있는 주류쪽의 인사들이 마치 소수파처럼 언성을 높이면서 분위기를 혼탁하게 만든 반면 당운영에 소외돼 있던 비주류들이 당의 주인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이날 전국위원회는 그전에 열렸던 전국위에서 의결한 당헌당규개정안에 대하여 법원이 효력정지가처분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논란 끝에 다시 열린 것이다. 전국위가 지금까지 진행된 전당대회 준비과정에 대해 소정의 적법한 결론을 내려주지 못하면 7.4 전당대회는 무산되고 한나라당은 극도의 혼란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전국위원회가 개회되자 이해봉 전당대회 의장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사퇴한 가운데 허천부의장이 사회봉을 잡았다. 조심스럽게 회의를 진행하던 허천 부의장이 '이의 없습니까?' 라며 사회봉을 드는 순간 '이의 있습니다' 라는 발언이 터져나오자 회의장은 일순간 얼어붙는 듯 긴장이 감돌았다. 이후 몇 사람이 연달아 문제제기를 하면서 회의장은 고성이 오가는 주주총회장으로 돌변했다. 대부분 구주류 인사들이었다. 다행히 소란은 가까스로 수습이 되어 기왕의 전당대회 진행과정이 법적으로 추인되긴 했지만, 이날의 소동은 당 주도 세력의 교체를 가져온 전당대회의 결과를 미리 예고해주는 듯 했다. 당을 사실상 좌지우지해온 구주류 인사들이 시끄러운 총회꾼 역할을 맡고 있는 진풍경이 바로 전당대회의 대세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틀 후의 전대결과에 대해서 언론들은 구주류의 몰락이라고 규정했다.

  7.4 전당대회의 결과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 이후 한나라당에 구축된 구체제가 붕괴하고 신체제의 등장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대선 승리 이후 한나라당은 다소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지지율에 있어서 줄기차게 하향곡선을 그려왔다. 한나라당의 구체제는 그동안 당원뿐 아니라 지지자들에게 단 한차례의 시원한 장면도 보여주지 못하고 답답한 정치만 하다가 참담한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잘못된 지난 일을 되짚는 것이 지금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신체제가 이끄는 한나라당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양대선거에서 승리하고, 또 한국 정치의 발전에 반면교사의 교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2007년 대선 경선이후 당이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078월에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은 이명박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박근혜후보는 경선결과에 아름답게 승복했다. 사실 이것으로 대선 승부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후의 대선과정이란 돌이켜 보면 알 수 있듯이 결국 하나마나 한 과정이었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그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반감은 어떤 야당 후보라도 승리할 수 있을 만큼 최악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명박 당선의 일등 공신은 단연 노무현 대통령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등공신은 누구일까? 손학규 민주당대표다. 왜냐고? 만약 손학규대표가 경선과정에서 이탈하여 한나라당을 탈당하지 않았다면 이명박 후보는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가 없었다. 손학규 후보는 박근혜 후보보다는 이명박 후보와 지지기반이 더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의 경선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에 있던 나는 이명박 대통령의 탄생을 미리 자축하며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그 후로 곧 모든 게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정치의 기본을 지키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군주로 불리는 당태종이 정관의 치로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룩한 비결은  직언을 수용하고 정적도 포용하는 열린 통치에 있었다.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것은 윌리엄 수어드(국무장관), 새먼 체이스(재무장관), 애든윈 스텐턴(국방장관) 등 대통령 후보 경선의 경쟁자들을 내각의 각료로 과감하게 중용함으로써 통합의 정치를 펼친 덕분이다. 링컨 대통령의 포용 정치는 그가 이끄는 북군이 남북전쟁에서 승리해 남북으로 쪼개지는 미국의 분열을 막는데 밑거름이 됐다. 두 통치자의 성공이 주는 교훈은 경쟁이 끝나면 상대를 품으라는 것이다

  2007년 대권 후보를 놓고 격돌하는 과정에서 표면화되기 시작한 친이-친박의 갈등은 경선시점에 최고조에 달했다. 따라서 경선 후 한나라당의 최대 과제는 당연히 친이친박의 갈등을 봉합하는 일이었다. 당태종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친형의 최고 책사인 위징을 자신의 최측근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태평성대의 기반을 마련했다. 당태종의 열린 포용 통치와 링컨의 통합의 정치는 한국 정치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당선된 뒤 민정계의 최창윤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김대중 대통령은 5-6공과 영남출신인 김중권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했다. 당내 통합과 화합의 정치 차원에서 이명박 후보도 경선 승리 뒤에 경쟁상대였던 박근혜 후보가  이끄는 친박 인사 중에서 최경환 의원이나 김성조 의원같은 인물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했어야 했다. 나아가 원내대표도 친박 좌장인 김무성 의원을 발탁했어야 했다. 만약 그렇게만 했더라면 한나라당에서 친이 친박 문제는 쉽게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MB(이명박 후보)는 정치교과서에 나오는 통합정치의 기본을 외면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업에서 평생을 살아온 MB는 그런 정치교과서를 잘 몰랐다고 할 수 있다.  MB의 측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 때문에 임태희 비서실장과 안상수 원내대표를 관철시켰다. 다시 말해 한나라당과 MB를 위한 인사가 아닌, 자기 자신들을 위한 인사를 하도록 한 것이다. 경선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중립을 표방했던 임태희 의원이 비서실장이 되자 친이 주변에서는 ', 우린 뭐지' 하는 실망과 함께 우수수 사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적군을 데려오면 몰라도 아무런 공헌이 없는 사람을 중용하는 이런 인사는 그동안 고생한 모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이해하기 힘든 인사라 아니할 수 없다. 경선 직후 안상수 원내대표 지명과 함께 한나라당 사무처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인사가 단행되었다. 한심한 일이었다. 당사무처는 공무원 같은 조직이어서 대선후보가 경정되면 자연스레 새로운 보스에게 충성을 바치는 집단인데 그걸 걷어찬 것이다. 참 치졸한 3류정치 수준이었다. 당시 누가 그런 인사를 주도했는지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 후로 친박은 야당과 진배없는 완전한 비주류로 전락했고, 18대 공천을 거치면서는 경쟁적인 비주류가 아닌 적대적인 비주류가 관계가 더욱 악화됐다. 그 후로부터 최근까지 한나라당은 한지붕 두 가족이 서로에게 으르렁대며 국민들로부터 멀어져갔다. 그러다가 결국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완패하고, 20114.27 보궐선거에서도 참패하면서 안상수 대표체제가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총선을 1년 앞두고 심각한 민심 이반이 가시화되면서 한나라당내에선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이 팽패해졌다. 그런데 구주류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득권고수에만 몰두했다. 정책위의장 파트너도 구하지 못할 정도로 약체였던 황우여 의원이 구주류 주자인 안경률 의원과 이병석 의원을 누르고 예기치 못한 완승을 거둔 것은 위기의식에 몰린 당내 소장파와 친박의 이심전심성 연대가 이루어진 결과였다. '새로운 한나라' 모임으로 상징되는 이 연대는 그 후 구주류가 주도하는 비대위의 결정을 번번이 뒤집으며 결과적으로 홍준표대표 체제를 탄생시켰다. 구주류연합 대표로 커밍아웃한 원희룡 후보가 총선불출마의 배수진을 치고도 4위로 밀려난 것은 이제 더 이상 구주류가 당내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홍준표 대표 체제가 시작부터 인사문제로 삐걱거리자 지도부의 난맥상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지도부 경선에서 낙승하는 순간 자신의 승리가 소장파 - 친박연대의 힘이라는 것을 망각한 게 아닌가 싶다. 아니 어쩌면 그걸 너무 잘 안 나머지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최선의 정치는 타협과 설득, 절충과 안배의 산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홍준표호가 총선의 승리를 견인하기는커녕 총선전에 난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흔히 선거를 앞두고도 상황이 어두우면 비방전이 난무하면서 희생양을 찾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홍준표- 황우여 양두마차 체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 12월이면 각 당이 선거체제에 돌입하기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하기엔 기껏 4,5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는 셈이다. 당은 이 기간 동안에 모든 역량을 결집해 당의 이미지를 바꾸고 국민의 지지를 올려야 한다. 정부도 이젠 당이 국정을 주도하는 모양새를 갖추도록 당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당은 아직도 내부불협화음으로 전열정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이며, 정부는 대통령의 레임덕을 우려해 오히려 당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한심스럽다. 당은 전당대회가 끝난 지 두 주일이 돼 가는데도 당직인선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정책기조가 친서민으로 잡혀가고 있어 다행이다. 청와대는 아직도 측근인사, 회전문 인사로 당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걸로 보아 재집권보다는 레임덕 방지에 치중하고 있는 형국이다. 나아가 청와대가 당의 정책노선까지 제동을 거는 것을 보면 위기돌파에 협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기싸움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5공 정부말 재집권을 위해서 이뤄진 6.29선언을 생각하면 소탐대실의 협량정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때 당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국정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할말을 하겠다던  홍준표 대표는 청와대의 무리한 인사에 손을 들어주는 등 당초 기대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홍준표호의 불길한 앞날이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당은 하루빨리 전열을 가다듬고 국정의 키를 움켜잡아야 한다. 금년 하반기 중에 한미FTA와 북한인권법을 매듭짓고, 경제정책기조를 성장에서 안정으로 바꾸는 한편, 재벌개혁과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주도하고, 10조원 상당의 재원을 마련한 민생복지 패키지를 제시해야 한다. 나아가 당의 외연확대를 위한 인재영입에 나서는 한편 부실지구당 정비를 앞당기는 등 내년 총선 준비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이 지금 같아서는 재집권은 어렵다. 이명박정부에 대한 최근의 민심은 한마디로 노무현정부 말기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의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국정운영의 일대쇄신이 절실하다. 먼저, 이명박정부의 최대 문제점을 한마디로 말하면 민심무시라고 할 수 있다. 민심을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알고도 무시하는 건지 이 정부에서는 민심을 거슬리는 일이 너무 많았다. 노무현정부가 무너진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무시당한다고 생각되면 여지없이 등을 돌리는 게 동서고금을 막론한 만고의 진리다. 친인척이 권력주변에 있으면 문제가 된다는 것은 역대 정권에서 예외 없이 나타난 사실이다. 아니 역대 정권뿐 아니라 과거 왕조시대에도 친인척의 발호 때문에 나라가 골병이 들었다이 정부들어서는 역대 최강의 친인척이, 그것도 현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8대 총선 공천때 65세 이상은 공천배제라는 원칙을 적용했지만 유일하게 형님만 예외로 살아났을 때 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까이서 함께 일한 내가 그랬을 때 우리 국민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임기 중반에 공정사회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불공정의 상징을 버젓이 옆에 두고 공정사회를 외치면 누가 그것을 믿고 받아들일까? 민심을 두려워한다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4대강사업에 찬성한 사람이지만, 지금도 왜 그걸 한꺼번에 임기내에 했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나의 심정이 이럴 때 우리 국민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첫째 민심이 천심으로 알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떠나간 민심도 눈길을 돌릴 것이라고 생각한다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인 것이다.

둘째, 널리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MB의 인사를 보면 우리 대한민국에 이렇게 사람이 없나하는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자존심이 상한다. 늘 주변에 평소에 알던 사람이 아니면 아주 가까운 사람이 추천한 인물들뿐이다. 국민 대다수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갔다오지만 인사때마다 번번히 병역미필이다최고 통치자의 신중이 지나치면 의심이 되고 자신감이 없을 때 주변만 살피게 된다. 이제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고도성장 경제의 주역중 한 사람인 MB의 멋진 진면목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셋째, 대통령이 모든 일을 직접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의 국정운영방식을 탈피해야 한다. 만기친람은 한마디로 분권과 위임이 아닌 권한집중을 의미한다. 권한집중은 다른 한편으로 책임집중을 필연적으로 초래한다. 아무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대통령에게 미루게 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하더라도 세상만사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이렇게 복잡다기해진 세상에서, 세계 10워권의 경제선진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이러니 뭔 일이 제대로 되겠는가. 더구나 일이 쌓이니 결정이 미루어져 만사가 때를 놓치기 쉽다. 이 정부 들어 많은 현안들이 지지부진한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더욱 이해하기 힘든 것은 노무현 정권 출범 직후 과거 정권의 인사들을 몰아내고 진보성향의 인물들을 기용하기 위해 신설했던 인사비서관을 이 정부도 그대로 두고 인사까지 만기친람하는 것이다역대 정부에서 청와대가 인사비서관을 두고 모든 인사를 직접 관장한 적은 없었다실질적 인사권이 없는 장관은 사실상 허수아비가 되기 쉽다. 조직장악도 제대로 안되는 이런 장관이 누가 신명나게 몸바쳐 일하겠는가. 더구나 많은 관료들은 대부분 이른바 실세라 불리는 엉뚱한 곳에 줄대기에 바쁘니 조직의 기강이나 사기가 엉망이 될 것은 명약관화 일이다. 여기서 더 우스운 일은 각 부처의 실무를 알 수 없는 대통령이 인사를 챙긴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며 실제로는 인사실무진을 장악한 엉뚱한 인물들이 비선에서 인사를 농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직사회에서 수많은 군상들이 누구 누구에게 줄을 대려고 혈안이었다는 것은 만천하가 아는 공지의 사실이 아닌가. 군대까지 포함한 전 공직사회의 기강이 이처럼 땅에 떨어진 적이 있었나 싶은 게 공직출신의 한 사람으로서의 소견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나도 마음이 약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불편한 얘기를 감히 용기를 내어 하는 이유는 내가 살고 한나라당이 살고 MB가 살고 우파정권이 살고 대한민국이 살기 위해서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최소한도 이 정도는 해야한다는 충정때문이다. 난 하지 않고 후회하기 보다는 차라리 하고나서 후회하자는 신념으로  사는 편이다. 인생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그 일을, 그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충정을 이해해주길 바라며 졸고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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